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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법 '사회적 비용' 너무 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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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3일 6월임시국회 폐회를 불과 5분 앞둔 순간의 '땅땅땅'. 국회 본회의장에서 사립학교법안의 통과를 알리는 망치 소리에 만감이 교차했다.

2005년 12월 열린우리당이 주도해 사학법안을 일방 처리한 뒤 교육담당 기자로, 정치부문 기자로서 마주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쳤기 때문이다.

사학법 통과 다음날 사학단체들은 "반대 의견이 많았는데도 졸속 처리해 자괴감과 비통함을 금치 못한다"고 말했다.

1000억원 가까운 돈을 학교에 들인 홍성대 상산학원 이사장은 "주머니를 털고 집이라도 판다는 심정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는데…"라며 허탈해 했다.

그들은 그때 개정된 사학법이 모든 사학을 비리 온상인 양 다룬다고 서운해 했다. 이들은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것은 물론 법률 불복종 운동을 벌이겠다고 했다. 학교를 폐쇄하겠다는 얘기도 했다. 실제 이듬해 1월 제주 지역 5개 사립고교가 신입생 배정을 거부하는 일도 있었다. 이를 막느라 청와대까지 나서는 볼썽사나운 일도 벌어졌다.

지난해 중반기 이후엔 정교(政敎) 갈등이 불거졌다. 가톨릭 신부와 목회자들이 "순교의 각오로 투쟁하겠다"는 말을 입에 올렸다. 올 초 개신교 목사 100여 명이 삭발하는 일도 있었다.


정치권도 혼란의 연속이었다. 한나라당은 사학법 통과 직후 50여 일간 국회 밖을 돌았다.

지난해 1월 사학법을 재개정하기로 전격 합의했지만 지지부진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여당의 대승적 양보를 권유하는 일도 있었지만 열린우리당이 거부했다. 올 2, 4월 임시국회에선 개정하기로 합의해 놓고 막판에 무산되곤 했다. 매번 열린우리당 진보 성향 의원들의 반대가 거셌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의 대표적 개혁 법안인데 물러설 수 없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들도 사석에서 "지역구 목사님이 불러 가보면 '사학법 개정을 위해 기도합시다'라고 해 머쓱했다고 한다.

이 모든 일이 사학법 졸속 처리 때문에 지난 1년 6개월간 우리 사회가 치른 '비용'이다. 법이 법이 아니었다. 사학들의 불복종으로 사실상 시행되지 못했다. 학교 현장은 현장대로 고통을 겪었다. 사학 측과 개정 사학법을 지지하는 세력 간 갈등이 노출되곤 했다. 정교 갈등도 부담이었다.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사학법 하나 때문에 민생법안 처리가 지연되곤 했다. 국민연금 법안과 로스쿨 법안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3일 사학법 통과는 늦었지만 다행이다.

만일 열린우리당의 실용 노선 의원들이 끝내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면, 한나라당이 적극적인 양보가 없었다면, 얼마나 많은 소모와 갈등이 확대됐을까. 1년 6개월 전 사학법 일방 통과 같은 일이 다시는 없길 바란다.

고정애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