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철원 심도여행|겨울 철새 "축제"에 매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겨울이 되면 철원읍·동송읍 등 강원도 철원군일대는 마치 겨울철새들의 축제장소라는 착각이 들 정도다. 민간인출입통제 선을 넘어 남방 한계선까지 이어지는 넓고 넓은 이곳 겨울들판엔 왜 이곳이 그들의 안식처가 될 수밖에 없는지 그 까닭을 전혀 모르는 듯 무심한 새들만이 한가로운 날갯짓으로 오락가락하며 자연을 만끽하고 있다. 지금은 비록 녹슬어 있지만 금방이라도 북쪽으로 달리고 싶은 철길.「철원 역」이라고 쓰인 팻말주변 어디에서나 육안으로, 혹은 망원경으로 두루미·청둥오리·기러기 떼를 이렇게 실컷(?) 볼 수 있는 곳도 그리 많지 않을 듯.
지난 17일 한국조류보호협회(회장금성만)는 일반인 2백25명이 참가한 가운데 철원으로 제24차 탐조여행을 떠났다. 매우 쌀쌀한 날씨가 될 것이라는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 집합장소인 용산 우체국 앞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나이와 직업은 달라도 새들을 보겠다는 기대와 설렘으로 휴일아침의 게으름을 잊은 사람들은 다섯 대의 대형버스에 나누어 몸을 실었다.
민통선을 통과해 한 떼의 새들을 제일 먼저 발견한 곳은 철원 역 부근.『저쪽에 두루미가 보인다!.』누군가 반가운 듯 큰소리로 외치자 미처 새를 발견하지 못한 주변의 사람들은『어느 방향이냐』며 분주히 망원경을 들고 두리번거린다.『야, 보인다. 네 마리나 되는데.』『정말 저게 두루미가 맞지요?』『그래. 그 옆쪽으로 수십 마리나 보이는 건 청둥오리고….』두루미·청둥오리 등을 발견하자 어린이들은 신기함으로, 또 어른들은 반가움으로 연이어 탄성을 터뜨린다.
6·25당시 격전지였던 백마고지가 멀리 바라보이고, 그보다 훨씬 앞쪽으로 갈대가 나부끼는 곳엔 족히 백여 마리는 넘어 보이는 청둥오리가 모여 있었고 그 하늘위로 수십 마리의 기러기 떼가 시원스레 V자로 줄지어 날고 있었다. 그밖에 철원 역에서 월정 역으로 이어지는 길에서도 들판 군데군데엔 서너 마리씩 모여 있는 흰 두루미·재두루미 등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한국조류보호협회 김 회장은『두루미·재두루미·기러기·청둥오리·말똥가리·독수리·까마귀·꿩 등 철원지역에선 여러 종류의 우리나라 겨울철새들을 마음놓고 볼 수 있는 게 특징』이라며 철원이 특히 철새들이 많은 이유에 대해『이 지역이 민간인 출입통제지역이라 자연이 그대로 보존돼 먹이가 많을 뿐 아니라 사람이 없어 새들에게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탐조여행에 참가한 사람들은 전 노동당사-얼음 창고-철원 역-샘통-월정 역(철원통일전망대)에 이르는 길 곳곳에서 겨울철새들을 관찰했다. 그밖에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채 벌거벗은 몸둥아리로 남아 있는 전 노동당사 등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았으며 꽁꽁 얼어붙은 동송 저수지 등을 구경하며 겨울들판의 정취도 느낄 수 있었다. 이날은 특히 이곳 철원에서 탈진한 채로 발견돼 40여 일간 한국조류보호협회의 치료를 받아 소생한 두루미 한 마리를 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내 주는 행사가 있어 더욱 뜻깊은 자리가 됐다.
아내와 함께 초등학생인 아들을 데리고 탐조여행에 처음 참가했다는 김상길씨(37·회사원)는『무엇보다도 아이에게 자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깨우쳐 줄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며 흐뭇해했다.
한국조류보호협회(797-4765)는 해마다 겨울이면 12월초부터 3월초까지 약 10회 정도 탐조여행을 실시하고 있는데(참가비 무료) 일반인들의 호응이 좋아 신청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협회는 또 앞으로 31일 철원(신정완료), 2월 14일 경남 주남저수지(예정), 25일 철원(봄방학 맞이 특별행사), 3월1 일 경기도 파주 군 통일 촌 등지에서 각각 두산그룹·삼성전자·동아생명·두산종합식품 후원으로 탐조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그밖에 오너드라이버인 경우 가족단위로 가 볼만한 철새도래지로는 경기도 강화 전등사에 서 정수사가는 길의 간척지, 경기도 통일전망대에서 행주대교에 이르는 곳, 가평 청평호 주변, 충남 태안·당진·서산 간척지 등 이 있다. 초보자인 경우는 한국조류보호협회에 조언을 구하면 좋다. 【전원=이은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