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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들어서면 백화점 온듯 착각/「모범시정」펼치는 일 이즈모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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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휴일봉사 등 실시… 아이디어 계속 개발/“행정은 서비스업”… 「마키팅상」 1위 차지
동경에서 비행기로 1시간반 서쪽으로 날면 인구 8만4천명의 조그만 도시 이즈모(출운)시에 다다른다. 시마네(도근)현 두번째 도시로 한적한 시골이다.
공항에서 버스로 40분 달리면 요즘 일본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이즈모시청이 나온다. 낡은 시청현관에 들어서면 왼쪽 안내석에 앉았던 여직원이 벌떡 일어나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를 한다. 마치 백화점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든다. 민원창구에 다가가면 누구나 금방 일어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하며 벌떡 일어서 맞는다. 손님이 서있는데 어떻게 앉아 응대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 이들의 자세다.
『행정은 최대의 서비스산업이다』라는 이즈모시장 이와쿠니 데쓴도(암국철인·57)의 캐치프레이즈를 실감나게 하는 광경이다. 그는 지난 89년 미국 최대 증권회사 메릴린치의 수석부사장자리를 걷어차고 이즈모시장선거에 출마,90% 이상의 지지로 당선됐다. 동경대 법학부 출신에 닛코(일흥)·모건스턴리·메릴린치증권의 수석부사장이라는 특이한 경력만으로도 언론의 주목을 받기에 족했지만 혁신적 시정 때문에 일약 전국적 인물이 됐다. 신화속에나 나오던 유통과 농업이 주업인 이즈모시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참신한 아이디어로 시정을 혁신하기 시작했다. 토·일요일 행정서비스코너 신설,복지카드제도,수의제,대대적인 조직 개편 등이 대표적인 그의 작품이다. 이 제도는 인근지역은 물론 중앙정부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그는 『백화점이 일요일에 쉬는 것 봤느냐』며 백화점에 행정서비스 코너를 신설,휴일 장보러온 주부들에게 주민등록증 등을 떼어주도록 했다.
이즈모시는 건강보험·노인수첩·연금수첩·혈액·혈압·병력 등을 한장의 카드에 입력시킨 복지카드를 발급해 이 카드만 내밀면 도장이나 다른 신분증이 없어도 주민증 발급·의료서비스 등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있다. 65세 이상의 노인 7천4백명이 이 카드를 갖고 있으며 농협 및 우체국과 협의,이 카드가 현금인출카드 역할도 하도록 했다.
수의는 은퇴한 농고교사나 임업시험장 출신 등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지원자에게 주는 일종의 명예직이다. 수의는 시민으로부터 요청이 있으면 즉시 달려가 정원수 등 나무상태를 진단해주고 무료로 처방까지 해준다. 농림수산성이 이 제도를 도입,현재 전국에 걸쳐 실시하고 있다. 이와쿠니시장은 또 부임후 전조직을 완전히 개편,이름까지 바꿨다.
이와쿠니시장의 이같은 혁신적 지방행정은 바로 공무원의 공복개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시역소(시청)라는 글자는 다름아닌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어느 사이엔가 공무원이 시장과 중앙부처의 눈치만 보는 행정으로 바뀌고 말았다』며 자신은 이를 원래 자리로 되돌려주려는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수도·도로·유치원·급식·노인홈 등의 시행정이 문자그대로 서비스산업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반문한다. 중앙정부는 종이와 연필의 행정이고 지방행정은 발로 뛰고 땀을 흘리는 눈물의 행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방공무원들이 20세에 들어와 60세 정년까지 전혀 머리도 쓰지 않고 지시하는 것만 하는 안일한 생활을 해왔다며 공무원들의 나태를 질타했다. 그래서 그는 취임하자마자 민원서류는 ▲1주일내 ▲1개월내 ▲3개월내 ▲불가 등 4종류의 답신기일을 정해 시간끄는 일이 없도록 했다. 시청에 인감증명서를 떼러온 다케시타 오사무씨(64)는 『전보다 민원처리 속도가 빨라지고 친절해진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시장은 확실히 행동력이 남다르다』고 소감을 얘기했다.
이즈모씨 총무부 이토 코(이등공·36)과장보는 『이와쿠니시장 취임후 직원의 의식이 「시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쪽으로 변하고 행정에 스피드감각이 도입된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고 밝혔다. 한편 이와쿠니시장은 『일본이 대기업과 생산자 본위로 나라를 이끌어왔지만 이제부터는 주민본위·소비자 본위로 바뀌어야 한다. 소비자는 모두 지방에 있으므로 지방행정위주로 일본의 정치·사회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진정한 의미의 지방자치를 주장한다.
이즈모시는 이같은 신선한 행동으로 90년 행정기관으로는 최초로 일본능률협회가 선정하는 「JMA 종합마키팅 우수상」베스트9에서 소니 등 유수한 기업을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지방에서 반란(?)을 일으켜 일본을 변혁시키자는 그의 행동이 얼마나 호응을 얻을지 모르지만 지방에서도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전국적 인물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그가 웅변으로 설명해주고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것 같다.<이즈모(출운)=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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