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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손길에 모국애 움터”/안정 되찾는 타지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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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한국말 모르지만 「설」만은 꼭 지켜/통금·검문 제외하면 내전느낌 가셔
【두샨베=김석환특파원 3신】 세계의 지붕이라는 파미르고원과 접해있는 두샨베는 거대한 분지에 형성된 도시다.
옛날부터 월요일마다 시장이 열려 동서 대상의 집합지였던 전통에 따라 1년여 지속되는 내전에도 불구하고 이곳 두샨베시장은 여전히 활기차 보인다.
타지크인·소코드인 상인들 속에 섞여 중앙아시아화한,우리 전통식품인 김치를 파는 한인할머니·아주머니들의 모습도 간혹 눈에 띈다.
『한창 때만큼은 못하지만 장사는 제법 됩니다. 요즘은 통금이 있고 애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것을 빼놓고는 대부분 정상적인 생활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두샨베 시내 풍경은 내전의 상흔과 곳곳에 총을 든 군인들,삼엄한 검문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위험이 느껴지지 않는다.
지난 23일에는 우리의 고유명절인 설날을 맞아 한인 3백여명이 두샨베시내 한인회관에서 떡·만두·필랍(쌀·고기·야채 등을 섞어 만든 중앙아시아의 고유음식) 등을 차려놓고 명절잔치를 벌였다.
소수민족으로서 극심한 불안에 떨었던 한인들의 생활이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대부분의 한인들은 단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조국이고,한두마디를 제외하고는 다 잃어버린 한글이지만 조국에 대한 관심을 지운적이 없어 설날만큼은 꼬박꼬박 지켜오고 있었다.
쌀농사 등을 지으며 오순도순 살던 타지크 한인들은 요즘 새삼스레 조국과 동포애를 느끼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타지크를 찾는 한국인들은 극소수였으나 내전으로 난민이 생기고 한인사회가 동요하면서 한국대사관에서 생전 처음 외교관을 보내 한인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구호품을 전달하는 등으로 조국의 의미를 되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민족 체전에 참가,처음 한국을 다녀왔다는 김 빅토르씨와 쿨랴브에서 큰 농사를 지었다는 오가이 미하일씨,한인 3세라는 김 알렉세이씨 등의 말.
『조국이 뭔지 몰랐던 동포들이 요즘 조국에 대해 많이 생각합니다. 한번도 본적은 없지만 우리 할아버지들의 고향사람들이 우리가 어려워지니 동포애를 발휘,관심을 기울여주는데 대해 무척 고맙게들 생각하고 있습니다.』
타지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은 피아가 구별되지 않는 종교전·지역전의 성격을 띠고있어 이 과정에서 자행되는 보복과 살육으로 정국이 불안하고 아직까지도 남북의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중심으로 이슬람 부흥당 세력이 득세,현 정부세력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어 동요가 완전히 가시지는 않고있다.
대부분 두샨베를 기점으로해 남쪽으로 2백50㎞ 정도 떨어진 지역에서 농사를 지었던 한인들에게 이러한 상황이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타지크의 정정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낙관만 할 수 없다는게 이곳 언론인들의 이야기다.
타지크 민주당 지도자였던 아슬리딘 소히브나자로프,타지크 회교도세력 지도자 쇼드몬 유수포프 등이 다른 정치인들과 함께 체포됐거나 추적을 받고있다.
현지 언론들의 말에 따르면 인근 우즈베크정부군의 지원아래 이루어지는 체포작전으로 이미 1천여명 이상의 행동대·정치인·시민들이 체포됐다.
지난 1년여동안 계속된 내전으로 인해 옛 공산세력의 몰락­재집권­재축출이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6만명의 사상자·행불자가 발생했다.
물적손실만 계산해봐도 약2천억루블 이상이 발생,2차세계대전 때보다 더 큰 손실을 보았다는 것이 타지크정부의 공식추계다.
타지크 내전을 취재하고 있는 모스코프스키에 노보스티지의 블라디미르 키셀료프기자는 『헬리콥터를 이용해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취재해 보면 내전의 심각성을 금방 알 수 있다. 국경지대를 지키는 병사들은 러시아군 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경은 개방되어 있고 무자헤딘 게릴라들이 공공연히 이곳을 통해 무기를 빼돌리고 있고 회교 근본주의자들이 무자헤딘에게 훈련받고 있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인들은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크 대통령은 친이슬람계가 타지크를 장악하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산독재자 라흐몬나비예프 타지크 대통령을 음양으로 지원했고 그가 지난해 9월초 축출되자 타지크에 대한 원료·식량 등의 공급선을 차단해 실질적 파워를 행사하고 있다. 현정부는 카리모프의 영향하에 있고 카리모프는 우즈베크 내의 타지크인들이 회교근본주의 세력에 의해 동화될까 두려워 하고 있는 것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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