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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침은 바로 과오다/오홍근(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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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남양군도의 마리애나제도 최남단에 자리한 괌(Guam)섬은 우리에게는 B52가 출격하는 미군기지로 알려져 왔으나 사실은 열대의 바다에 떠있는 진주같은 관광휴양지로 더 유명하다.
그 괌에 그림같은 골프장이 3개 있는데,요즘 그곳 골프장마다 씀씀이 좋은 한국인들로 북새통이 벌어진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줄잇는 골프 해외여행
열대수림이 아늑하게 늘어지는 등 도저히 겨울날씨를 연상할 수 없는 풍광을 뺀다면 여기가 한국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온통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현지에서는 한국을 일본 못지않은 부자나라로 아는 사람이 적지 않다던가.
국내에서는 국내대로 관광객들의 골프투어를 주선하고 있는 여행사에서 법석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출국일자를 잡아놓고 현지 골프장측과 교섭하고 있으나 바로 한국인들 때문에 초만원이 된 골프장에 부킹이 제대로 될리 없다. 때문에 국제전화와 팩시밀리에 불이 나고 여행일정이 늦춰지는 등 아우성이라는 이야기다.
얼지않는 골프장은 괌에만 있는게 아니다. 하와이·인도네시아·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에 얼마든지 있고 또 골프관광객들이 그것을 모를리도 없다.
때문에 연말연시나 설연휴·주말에 김포공항에서는 즐비하게 골프채가 비행기에 실려나간다. 그것도 직접 골프채를 갖고나가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빈몸으로 가서 현지에서 채를 빌린다고 한다.
물론 골프도 이제 대중화 된만큼 골프치는 것 자체를 탓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또 상사원들은 해외출장중 사업상 필요에 따라 골프를 쳐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도 아니면서 골프 그 자체만을 위한 피한여행은 지나친 것이 아닐까.
내돈 내가 쓰는데 웬 참견이냐고 하면 그뿐일 수도 있으나 사실은 그게 그렇지 않다. 흔해빠진 「애국타령」을 하자는게 아니라,더불어 사는 지혜와 절제하고 자제하는 슬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게 요즘이다. 자고나면 기업이 그야말로 전우의 시체처럼 쓰러지고 신문을 펴들면 기업인의 자살소식이 줄을 잇는게 오늘 이 나라의 형편이다. 비록 그린이 얼어붙어 쳐올린 공이 퉁겨 달아날지라도 이 땅에도 골프장은 있다. 한두달만 참으면 된다.
지나침은 곧 과와 통한다. 과는 지난다는 말이지만 동시에 허물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지나침은 곧 과오다. 과오가,지나침이 겹치면 나라도 결딴날 수 있다.
○절제 아쉬운 문민시대
우리는 지난날 절제·자제하지 못하고 「과」해서 실패한 사례를 무수히 보아왔다. 5·16 군사쿠데타에 명분을 안겨준 것은 4·19 이후 매일 거리를 누비던 시위대의 무절제였다. 그렇게 등장한 3공은 유신으로 대표되어지는 「지나침」을 범하면서 무너졌고 광주항쟁과 5공비리도 군부의 힘과 이른바 측근들의 「지나친」욕심에서 비롯된 비극이었다.
주권국가가 또 다른 주권국가에 수십억달러를 빌려줘 놓고도 이자한푼 못받아내는 사태나 국가원수가 다른 국가원수로부터 공식석상에서 알맹이가 쏙 빠진 껍데기 블랙박스를 넘겨받은 것도 실속없는 북방외교에 급급한 「지나침」에서 빚어진 망신살이었다.
○정치권부터 솔선해야
바야흐로 꿈에도 그리던 문민시대가 열린다. 군사통치시대와 비교되는 개념이라면 문민시대야말로 절제와 자제가 필수적인 덕목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쌀시장을 개방하지 않으면 불행해질 수 있다」는 강대국 각료의 협박을 말한마디 못하고 감내해야 하는 것이 작금의 우리 사정이다. 오늘 우리가 이를 악물며 씀씀이를 절제하고 힘을 자제·축적해야 하는 이유는 거기에도 있다.
문제는 그런 풍토의 조성이다. 그런 윗물은 정치권에서 솟아나 아래로 흘러야 한다. 야권이 나약해지고 힘이 여권으로 몰리는 판세를 보면서 특히 힘의 절제,「견제와 균형」기능의 강화를 생각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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