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건지는「복조리」장사 35년|남대문시장서 죽세공품상점 경영 문명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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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복조리를 팔면서 설날기분을 느끼던 것도 이젠 지난 얘기예요. 해마다 이맘때면 복조리를 찾는 손님들로 가게가 붐볐지만 이제는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 많이 가져다 놓지도 않지요.』서울 남대문시장에서 35년간 죽-세공품을 팔아 온 상인 문명환씨(51·신흥상회)는 복조리가 사람들 기억 속에서 지워져 가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조리는 쌀을 이는 기구로 복조리는 특히 설날 이른 아침 또는 섣달 그믐날밤 자정이 넘어 사서 집안의 벽에 걸어 두는 조리를 말한다. 정확한 연유는 밝혀져 있지 않으나 그해의 행복을 쌀알과 같이 조리로 일어 취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풍속으로 옛사람들은 밤에 자다 말고 일어나서 1년 동안 쓸 수 있는 양의 복조리를 사곤 했다.
『설날 새벽녘이면 복조리상인들은「복조리 사시오, 복조리…」하고 외치며 골목을 돌아다녔죠. 집에서 굳이 청하지 않아도 상인들은 마당에 복조리를 던져 놓고 후에 조리 값을 받으러 오기도 하는데 이때 값치르는 것을 거절하는 사람은 없었어요』라며 기억을 더듬은 문씨는 아직도 복조리 상인이 작은 지방엔 남아 있다고 일러준다. 문씨로부터 복조리를 사가는 몇 안 되는 손님이 바로 이런 상인들이라는 것. 신정·설날을 앞둔 열흘 전부터 팔리기 시작하는 복조리는 소량으로 구입하는 개인보다 백 단위로 구입해 가는 상인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또 요즘엔 지방 소도시의 경우 마을청년회 등의 단체에서 마을에 돌리기 위해 구입하기도 하고 아르바이트용으로 1백 개 정도를 구입하는 대학생들도 눈에 띈다고.
지난 신정 때 문씨의 가게에서 나간 복조리는 대략 1만여 개로 약 7∼8년 전 판매량에 비하면 5분의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는 게 문씨의 설명이다.
그는『이번 설 판매량은 신정 때만도 못할 것 같다』며 복조리 판매가 부진한 이유를『이젠 조리를 쓰는 집이 거의 없으며 문을 꼭꼭 잠그고 사는 아파트가 많아져 마당에 복조리를 던져 넣을 수 없는 까닭』이라고 짚었다.
정읍·합천·담양 등지에서 만들어져 올라온 복조리는 크기에 따라 한 쌍에 2천∼5천 원 하는데 최근엔 복 주머니가 달린 3천 원 짜 리가 가장 많이 나간다고 한다. 복조리는 한때 작은 규모로 나갈 뿐이고 주로 예단용·선물용 죽공예품으로 가게를 운영한다는 문씨는『최근 불경기를 피부로 실감하고 있다』면서『새해엔 정말 경기가 회복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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