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확증 편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마케팅 연구에선 고객들이 가게에 들어섰을 때 처음 봤던 상품을 구입하는 경향이 높다고 한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고객의 눈길을 끌었고, 그 인상이 결국 구매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사람도 첫인상이 중요하다.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이 그 후의 판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처음에 호감을 가지면 웬만한 실수도 애교로 봐주지만, 좋지 않은 인상을 준 사람은 무엇을 해도 고깝게 보인다.

 인지과학에선 이를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증거는 쉽게 발견하거나, 일부러 찾기까지 하는 데 반해 자신의 신념에 어긋나는 증거는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보름달 저녁에 교통사고가 많다고 믿는 사람은 보름달이 뜬 날에 일어난 사고에만 주목하고 그 밖의 기간에 일어난 사고는 무시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보름달과 사고가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는 잘못된 인식이 왜곡된 정보에 의해 더욱 강화되고, 나중에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코넬대학의 심리학과 교수인 토머스 길로비치는 “확증적인 정보에 과도하게 영향을 받는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인지적으로 편안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현실을 직시하기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한 조각의 정보에 매달리기 쉽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생각에 부합하는 기억은 쉽게 떠올리는 반면 불편한 사실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확증 편향이 두뇌의 기억 활동에도 작용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신념에 매우 투철한 인물이다. 일단 입장을 정하면 세상이 두 쪽 나도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한다. 자신의 주장에 부합하는 증거를 대면서 국민을 설득하려 하지만, 그에 반하는 증거는 철저히 무시한다. 부동산 정책이 그렇고, 언론 대책이 그렇다. 나는 옳고, 반대하는 사람은 틀렸다.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대입 정책도 마찬가지다. 반대하는 목소리에는 귀를 막고, 오로지 자신의 주장만 펼친다. 대통령의 확증 편향은 청와대 참모들과 정부 공무원들이 제공하는 선별적인 정보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심지어 대학 총장들을 모아 놓고 ‘토론회’라는 형식의 왜곡된 검증 절차까지 거쳤다. 총장들에게 반박할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일방적인 훈시를 해 놓고 ‘반대논리를 모두 잠재웠다’는 확신을 굳힌다. 임기 말이 다가오면서 이런 확증 편향적 증세가 더해지는 것 같아 불안하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