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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가방으로 멋 부릴 시대 갔죠”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노영돈 현대종합상사 대표는 현대종합상사 공채 1기 출신이다. 싱가포르 지사장, 국내 철강사업본부장을 거쳐 올해 3월 사장에 취임한 그는 “새로운 자리가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노영돈 대표는…
1953년 대구에서 태어나 계성고,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 현대종합상사 공채 1기로 입사했다. 1980년 홍콩지사를 시작으로 미국ㆍ싱가포르에서 해외 비즈니스 경험을 쌓았고, 2007년 3월 공채 출신 최초로 대표이사 사장에 뽑혔다.

30년 동안 종합상사의 희비를 맛봤기에 마음이 무겁다는 것. 신문로 본사 사장실을 찾았을 때, 한쪽 벽면을 다 가릴 만큼 커다란 세계지도가 눈에 띄었다. “종합상사 수장의 방답다”는 기자의 말에 노 대표는 대답 대신 웃음으로 자리를 권했다.

“고맙습니다. 회사의 역사를 온몸으로 체험한 터라 책임감이 큽니다. ‘어떻게 하면 종합상사를 다시 정상에 세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밤잠을 설칠 때가 많습니다.”

‘상사맨 30년’인 노 대표에게 “2007년 종합상사는 무엇을 하는 회사냐”고 물었다.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한참을 고민했다.

“글로벌 오거나이저(Global Organizer)입니다.” 노 대표는 “과거와 현재의 종합상사는 분명 다르다”고 강조했다.

“예전에는 외국 바이어들이 ‘무엇을 하는 회사냐’고 물으면 ‘제너럴 트레이딩 컴퍼니’라고 답했어요. 라면부터 로켓까지 말 그대로 ‘제너럴’하게 제품을 팔았으니까요. 이제는 한물간 생각입니다. 무역 외에 투자·제조로 수익원이 확대됐고, 무역 중개의 대상과 방법도 고도화됐지요.”

눈에 보이는 제품 외에 설계와 엔지니어링, 서비스도 사고파는 대상이 됐다. 우리나라 제품을 외국에 수출하는 단순 무역 대행에서 삼국 간 거래, 복합거래도 이뤄지고 있다.

중국의 공장에서 생산한 가구를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 수출하거나, 한국산 고급 강철과 중국산 일반 강철을 패키지로 외국에 공급하는 식이다. 세계 각지에 산재해 있는 제품이나 기술을 엮어 사업을 만드는 것이 종합상사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노 대표는 “상품을 수입해 브랜드를 붙여 다시 수출하는 오거나이징 기능은 해외 네트워크를 가지고 오래전부터 글로벌 감각을 익혀 온 덕분”이라고 종합상사의 경쟁력을 알려줬다.

“과거 영화에 비해 보잘것없어”

뛰어난 해외 정보력은 종합상사들의 해외자원개발 투자에도 큰 몫을 했다.

“누가 자원이 있고, 어디에 있느냐는 정보를 얻는 데는 아무래도 종합상사가 유리합니다. 종합상사들의 자원개발 투자는 미래를 보고 안정된 수익원을 확보하겠다는 의지예요. 이제 종합상사는 세계를 봐야 합니다. 브릭스(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비스타(VISTA:베트남·인도네시아·남아프리카공화국·터키·아르헨티나) 같은 신흥국가에 진출해 시장을 넓혀야지요. 그러기 위해서 창의력과 개척정신을 가진 인재가 필요하고요. 불도저 같은 추진력, 무엇보다 하겠다는 투지가 중요해요.”

왜 다시 종합상사인가

▶ 해외 네트워크, 따라올 자 없다
▶ 재무구조 개선되고 있다
▶ 혹독했던 시련이 오히려 약 됐다
▶ 물건이 아닌 가치를 판다
▶ ‘글로벌 오거나이저’라는 비전 명확

문제는 리스크다. 자원개발이 성공하면 ‘대박’임에 틀림없지만 그만큼 위험도 크기 때문이다. 노 대표는 “정부가 비용의 일부를 감당해 위험 요소가 적다”며 “노하우가 쌓이면 안정된 수익을 줄 수 있는 가치 있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예전처럼 수출대행이라는 단순업무에 의존해서는 종합상사에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더 이상 물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그룹 계열사도 없다.

각 계열사들은 생존을 위해 각개약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살 길을 찾으려면 남의 사업이 아닌 자기만의 사업, 지식과 정보를 활용해 높은 부가가치를 올리는 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먹고살고, 미래에 투자도 할 수 있다. 종합상사의 변신은 이런 시대적 변화에 적응한 결과이기도 하다.

‘부활’했다곤 하지만 아직 과거의 영화에 비하면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잘나갈 때 매출이 25조원까지 갔었죠.

지금은 1조2000억원 수준인데 부활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승승장구할 때와 한번 와장창 깨진 후에 다시 일어선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죠. 규모로는 몰라도 내용적으로는 부활했다고 할 수 있죠.”

노 대표는 “종합상사가 다시 쓰러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종합상사들이 화려한 시절, 암울한 시절을 겪으면서 성숙했다는 얘기다.

“해외 네트워크, 인력, 실패 경험이 모두 자산입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자산이기도 하고요. 자산을 버리지 말고 잘 활용해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실 종합상사는 특정한 업종으로 분류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사업과 다양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사람을 자산으로 하는 지식산업이다.

인적 자산은 지식경제 시대인 미래에 더 큰 가치를 발휘한다. 자원투자든, 해외 공장운영이든, 마케팅이든, 글로벌 오거나이징이든 모두 지식산업의 한 단면이다. 노 대표는 이런 자산을 잘 활용해 달라는 얘기다.

노 대표가 입사한 1977년에는 종합상사가 대학 졸업생들에게 최고의 인기 직장이었다. 대기업들이 양복 입고 007가방을 든 남자가 하늘을 나는 비행기 아래 서 있는 사진으로 공개 채용 공고를 내던 시절이다. 노 대표는 “그때 007 시리즈 주인공이 ‘숀 코너리’였는데 그 가방이 참 멋있어 보였다”며 “입사하고 보니 가방 안에 서류 뭉치밖에 없더라”고 웃었다.

그는 “수출 최전방을 이끄는 종합상사에서 일하고 싶어 현대그룹 공채에서 1·2·3지망 모두 종합상사를 지원할 정도였다”며 “월급도 다른 계열 회사보다 5만5000원 정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돈으로 17만5000원이 그의 첫 월급이었다. 그렇게 007가방 들고 세계로 다녔던 사람들 덕에 오늘날 한국경제가 이만큼 먹고살게 된 것도 사실이다.

“올해 신입사원을 20명 채용했는데 3300명이 지원했더군요. 과거 종합상사의 명성을 되찾은 것 같아 감개무량했지요. 대학가에서도 종합상사가 살아나고 있다는 소문이 난 모양입니다.”

노 대표는 가장 힘들었던 때를 2003년으로 기억한다. 심각한 유동성 위기로 돈이 돌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가 어려워서 힘들었던 게 아니다. 그는 “매달 몇십 명씩 사표를 내는 것을 보고 절망했다”고 말했다. 난파선에서 뛰어내리던 동료들 역시 딱히 해결책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침몰하지 않기 위해 먼저 뛰어내린 것뿐이다. 그때 기억 때문일까. 노 대표가 사장 취임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직원들에게 회사의 비전을 심어준 것이다. ‘일 중심의 경영 문화 만들기’와 ‘영업력 강화에 총력을 다하자.’

노 대표가 주장한 비전이다.

“다시 무너지는 일 없을 것”

“종합상사는 눈에 보이는 게 없잖아요. 제조업과 달리 구심점을 찾기가 힘들지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잘되는 조직은 잘되는 조직끼리 모아서 상승효과를 내고 잘되지 않는 조직들은 다시 기본부터 익히고 있습니다. 3개월이 지나면서 직원들이 ‘한번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

종합상사에 근무하는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노 대표의 경영이 통했는지 현대종합상사의 상반기 영업 실적은 지난해보다 매출·영업이익이 50%가량 늘었다.

“옛날에는 계약서에 도장을 받는 게 주 업무였어요. 이젠 달라졌지요. 부동산 중개업 아시죠? 좋은 매물을 직접 찾아 다니는 게 007의 새로운 임무입니다.”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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