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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ay' 기관들은 전쟁중

중앙일보

입력

"국민연금 때문에 기관들 간에 피튀기는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A 투자자문사 펀드매니저의 말이다. 상반기 수익률을 평가하는 '디데이(D-Day)'가 바로 29일 오늘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올해부터 단기성과에 따라 자금 집행을 보류하거나 축소, 늘리는 방식을 택했다.

29일 국민연금은 현재 33개 운용사 및 투자자문사에 주식운용을 위탁하고 있다고 밝혔다. 매년 6개월마다 이들 위탁운용사의 성적을 평가해 등급을 매긴다.

국민연금 위탁운용팀의 한 관계자는 "예를 들어 6번 평가할 경우 3번 이상 A를 받으면 A등급이 된다"고 설명했다. 각 등급별로 25% 씩, S A B C 4개 등급으로 나눈다.

평가할 때마다 과거 2년치를 누적해 평가하는 등 장기 성적을 중요시하지만 올해부터는 단기 성과에 따라 자금 집행액에 차등을 두기로 했다.

장기적으로 성적이 좋더라도 최단기 성과가 나쁘면 자금 집행이 보류되거나 규모가 줄어드는 셈이다.

A등급이 연간 2000억원 정도를 받는다고 할 때 5년이면 1조원이 들어온다. 운용사나 투자자문사 입장에선 '초특급 VIP'가 아닐 수 없다.

한 국민연금 기금 운용을 담당하는 B 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장기 성적 레코드가 없는 운용사나 규모가 작은 투자자문사들로서는 생사가 걸린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이들에겐 이번 한주가 '피말리는 한주'였다.

심지어 경쟁사인 다른 운용사가 많이 보유한 종목을 집중 매도하는 현상도 일부 나타났다고 A 투자자문사 펀드매니저는 털어놨다.

그는 "국민연금에서 최상위 평가를 받은 미래에셋의 펀드들 수익률이 최근 한주간 안 좋았던 것도 이런 이유"라며 "이번주 종목별 급등락이 심한 장세가 나타난 것도 국민연금을 둘러싼 '전쟁'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28일 기준 수탁액 5000억원 이상인 미래에셋 대표펀드 8개 펀드가 모두 주간수익률 -3.3% 이하의 손실을 기록했다.

미래에셋의 간판펀드인 '미래에셋디스커버리주식2'펀드는 한주간 -4.4%의 손실을 냈다. 이 펀드는 규모가 1조400억원에 이른다. 또 1조3000억원 규모의 '3억만들기인디펜던스주식' 펀드의 수익률도 -4.2%로 저조했다. 같은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 -2.8%을 크게 밑돈 수치다.

국민연금은 내년 국내 주식시장에 44조원을 쏟아 붓겠다고 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목표는 단기 수익률이 높은 위탁운용사를 찾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함께할 '파트너십'을 유지할 운용사를 찾는 것"이라며 "지금은 그 과도기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도기가 지날 때까진 '피 튀기고 피말리는' 전쟁을 피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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