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길의원 강수 던져놓고 관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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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 대표 결단 촉구하며 「대권」의지 다져
국민당 최고위원직 사퇴를 선언한 김동길의원이 쉽게 당사로 돌아올 것 같지 않다.
김 박사(김 의원이 불리길 좋아하는 호칭이며,측근들이 부르는 호칭)는 지난 6일 정주영대표의 면전을 박차고 나간 뒤 몇차례 국민당측 진무사절을 만났지만 자신의 의사를 전혀 굽히지 않고 있다는 전언이다.
김 박사는 기자들의 취재요청도 피하면서 사람도 골라서 만나고 있다. 짐을 꾸려 국민당사를 떠나 누나인 고 김옥길 전 이대총장이 말년을 보냈던 문경에 머물 때만해도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8일 귀경한 직후 국민당측의 박철언최고위원과 김정남총무,이어 이자헌최고위원과 문창모의원까지는 만났지만 정 대표의 아들인 정몽준의원은 만나주지 않았다. 10일에는 김효영사무총장을 만났다.
김 박사를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시간이 필요하다』는 진단들이다. 결국 김 박사의 의지는 변함없으며 정 대표의 「결단」만이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전망으로 해석된다.
김 박사가 요구하고 있는 정 대표의 「결단」은 「기금 2천억원 조성」과 「2선후퇴」 두가지다. 김 박사는 이같은 요구의 「충격적」전달을 위해 『정 대표의 대선출마부터가 잘못된 것』이라는 「비상식적」메시지도 함께 남겼다.
김 박사의 이같은 요구는 『정 대표의 희생으로 당도 살고,나도 살자』는 얘기다. 먼저 기금문제는 이념도 동지애도 없는 국민당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비상구다. 「2선후퇴」는 이와 함께 김영삼 차기대통령의 공세적 압력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응급조치다. 결론적으로 이 두가지는 김 박사 자신의 「당권장악」,나아가 「대권도전」까지 가능케하는 전제조건인 셈이다.
따라서 김 박사의 돌발행위는 차후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온통 걸어맨 정 대표와의 「대담판」이랄 수 있다. 그런만큼 조건도 까다롭다.
정 대표가 이같은 조건을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그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돈만 내고 물러나라』는 식의 주장이 『통할리가 없다』고 단정한다. 돈을 내놓는다면 돈때문에 물러나지 않을 것이고,물러난다면 돈을 내놓을리가 없다는 확신들이다.
정 대표를 누구보다 가깝게 지켜봐온 김 박사인만큼 이같은 정 대표의 특성을 짐작하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최고위원직을 사퇴하기 직전 가능한 강수를 모두 던진 것이다. 정 대표의 대선출마 자체를 「가장 큰 실수」로 규정했는가 하면 『실수를 했으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두가지 조건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까지 가정해 『그럴 경우 국민당은 와해되며 모든 책임은 정 대표의 몫』이라고 못박았다.
김 박사는 또 『정 대표가 나하고 약속한 말이나 문서를 공개하면 그는 설 자리도 없어진다』며 강한 위협성 발언까지 던져 놓았다.
하지만 김 박사는 「혹시」하는 마음에서 돌아올 여지는 남겨두었다. 정 대표의 입지를 앗아갈 수 있는 「약속」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으며,『일단 최고위원직을 사퇴한다』며 당적은 버리지 않았다. 이후에도 신촌자택을 찾아간 기자를 빼돌리고 도망치면서까지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김 박사는 확실한 승부수를 던졌으면서도 그것이 확산되기를 피하고 있는 것이다. 정 대표의 결심을 기대하는 한편 국민당내에서 뜻을 같이하는 당직자들의 설득이 성공하도록 기다리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당 당직자들은 대부분 김 박사의 두가지 요구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방법을 달리하고 있을 뿐이다.
김 박사는 기다리는 방법으로 도미를 계획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말께 출국해 다음달 초순 귀국할 예정이다. 그는 분명 「대권」의지를 가지고 학계를 떠나는 결단을 내렸다. 태평양시대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도 대권의지를 시사했었다. 그러다가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국민당에 합류해 대권을 잠시 유보했던 것이다. 결국 앞으로 그의 행보는 대권접근에의 유·불리에 따라 점쳐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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