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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1)|"탈 근대" 꿈꾸는 신세대의 등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우리 문화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양태·시도 등을 묶은 시리즈「젊은 문화」를 연재한다. 주로 젊은 예술가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이 같은 현상은 시대상황·의식의 변화와 연관되어 있다. 긍정과 부정이 함께 하는 새로운 움직임들을 통해 우리문화의 앞날을 전망해 본다. 【편집자 주】
문학 본연의 현실의식이나 문학의 기존 형식을 무시하는 일군의 젊은 문인들이 차츰 문학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복잡다단한 현대 첨단사회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이제 합리성·객관성·이성 등 근대정신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소위「포스트모더니즘」계열로 분류돼 가는 일단의 신세대 문인들이 기존의문학과는 내용이나 형식에서 판이하게 다른 작품들을 내놓고 있다.
한국 근·현대문학의 본류를 이뤘던 사실주의와 모더니즘의 현실의식·합리성, 그리고 그 형식을 넘어 이들은 농촌이나 공장의 이가 물린 톱니바퀴 대신 컴퓨터 세대로서의 감각과 정신을 꿈꾼다. 인간을 가꾸기 위한 계몽주의나 사회를 개량키 위한 역사적 진보주의는 이들에겐 이미 철지난 근대주의고 이제 탈 근대를 꿈꾸는 것이다.
80년대를 이끌던 참여문학의 이념이 빠져나간 90년대 들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한20, 30대의 이「신세대문인」들은 기존의 시에서 찾아보기 힘든 욕설·성적 언어, 그리고 기호·그림·사진 등을 시어로 사용하며 일상적 삶·문명·도시·위선·제도 등을 기발한 착상으로 파헤치는 시들을 생산하고 있다.
또 일정한 주제나 이야기의 흐름 없이 주인공·화자·이야기를 한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바꾸고 나눠 가면서·밑도 끝도 없는 소설들을 쓰고 있다. 합리성·객관성 자체를 부정하는 시점에서 세계와 인간의 삶에 대한'불확실성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형식적 실험이다.
이들 신세대 문학은 문학의 내용보다는 형식실험을 추구한다. 농촌도, 6·25도, 80년 광주도 체험하지 못한 이들에겐 작품의「무엇을」받쳐 줄 만한 원체험이 없다. 때문에 기성형식을 무시해 버리고「어떻게」라는 새로운 형식을 추구해 나간다. 때문에 문학이 가볍다, 속 빈 강정이라는 비판도 부른다. 또 문학을 대중 문화 화, 혹은 일회용 소비상품화하고 있다는 비난도 받는다.
그러한 부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포스트모더니즘」이란 하나의 시대정신, 혹은 시대사조로 무장해 가고 있는 이들 신세대 문학은 하나의 흐름으로 정착돼 가고 있다.
이 같은 모습들은 신춘문예응모작들을 통해 읽을 수 있다. 작품 읽기의 끈기 끝의 허탈함, 그리고 당혹 감을 감출 수 없었다는 것이 93년도 각 일간지 신춘문예 심사 자들의 일반적 견해다.
작품 대부분이 고만고만한 수준을 유지하며 끝까지 읽게는 만들었으나 결국 속 빈 강정들뿐 작품의 속, 곧 문학 정신 내지 혼은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응모시중 많은 작품이 바다를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 두드러진 현상이었다. 문명사회의 제도에 갇힌 인간의 본질을 찾으려는 양 바다로 떠난 대부분의 시들이 하나의 제도인 시적 문법을 과감치 포기한 죄로 무의미의 바다에 빠져 익사했다. 이념이나 현실비판, 혹은 재현을 포기한 응모소설들은 기승전결이란 이야기 구성 자체를 끌고 갈 수 없을 정도로 서사구조의 허약성을 드러냈다. 또 소위 패스티시(혼성모방)기법이라며 아무런 인용표시도 없이 기성작품을 그대로 인용한 당선작이 발표 후 표절로 판명돼 당선이 취소되기도 했다. 이 같은 부정적 현상에도 불구하고「포스트모더니즘」계열의 작품이 기성 문단의 벽안으로 밀려들어오고, 또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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