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V『컨버…』기술 만능주의 맹점 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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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번 주 TV외화 중 단연 돋보이는 작품은 MBC-TV「주말의 명화」로 방송되는『컨버세이션』(Conversation·토요일 밤1O시30분)이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1974년에 만든 이 뛰어난 추리 물은 직업적 전문성과 시민적 윤리 감 사이에서 고민하는 한 도청기술자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기술만능주의 맹점을 비판한 작품이다.
독실한 카톨릭신자이자 재즈광인 중년의 독신 남 해리(진 해크먼 분)는 업계에선 알아주는 일류 도청전문가다. 그는 어떤 회사 사장의 의뢰로 사장 아내인 앤과 그녀의 정부인 마크 사이의 대화를 도청한다.
그의 일은 의뢰 받은 대로 테이프를 넘겨주고 보수를 받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앤과 마크의 대화를 거듭 들으면서 해리는 그 내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도청 테이프를 사장에게 넘겨주면 앤과 마크가 사장의 공작으로 살해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고민에 빠진다.
이 작품은 청년 영화작가시절의 코폴라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확대(B1ow-Up)』를 자기 식으로 변용 해 본 영화다. 그래서『확대』에서의 이미지의 주·객관성 혼동이라는 테마는 사운드의 불확실성으로 뒤바뀐다.
최고의 음향전문가인 주인공 해리조차 자신이 녹음한 테이프를 주관적으로 해석하게 된다는 전개는 현실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모호성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해리를 프레임의 주변 부로 몰아넣은 화면구성도 그의 극단적인 자기소외와 상응한다.
『대부』의 엄청난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코폴라가 6년간 쌓아 오던 구상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당시 미국영화로서는 놀라울 만큼 세련된 형식미를 갖춘 영화로 코폴라의 영화 광적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당시 미국을 떠들썩하게 하던 워터게이트사건과 흡사한 내용이라 더욱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영화광이라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영화다.
KBS-2TV에서 방송되는『시골영웅』(Local Hero. 토요일 밤8시55분)도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영국의 신예 빌 포사이스가 1983년 만든 이 영화는 스코틀랜드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독특한 감각의 코미디다. 미국 석유회사의 직원이 정유공장 부지를 찾아 스코틀랜드의 자그마한 어촌을 방문한다. 그는 사업차 온 이곳에서 따뜻한 정감을 느끼게 된다. 왕년의 스타 버트 랭커스터의 원숙한 연기도 이 영화의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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