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직장인 <44>- 곰팡이·효모기르는 "세균의 보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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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유전공학 연구소의 연구기사 이문수 씨(31)는 세균의 보모요, 곰팡이 유치원의 원장이다. 그의 슬하에서 보살핌을 받는 미생물은 세균·곰팡이·효모 등 무려 7천여종. 이들은 세계각국에서 수입된 미생물들로 혈통있는 미생물 가계를 자랑한다.
나름대로 족보가 확실한 이들 우량 미생물들은 생명과학자들에게 있어 보물같은 존재다. 암치료제·항생제·화장품·발효유·무공해 농약 등 이루 셀수없는 각종 상품들이 이들 미생물들로부터 직·간접으로 생산된다. 최근 미래학문으로 각광받는 유전공학·생명공학 등의 연구는 사실상 이들 미생물 없이는 불가능하다.
『미생물 관리의 핵심은 혈통을 온존시키는데 있습니다. 나름대로의 특성을 제대로 갖춘 미생물들만이 올바른 연구의 바탕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씨는 그러나 미생물의 혈통관리가 말만큼 쉽지는 않다고 말한다. 이는 미생물들이 영양분·배양온도 등 외부환경의 변화에 민감한 탓도 있고 세균·곰팡이 등 다른 미생물들로 오염될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새끼 손톱만한 유리병(전문용어로 바이얼)속에 담져진 미생물들은 흔히 냉장고나 영하 80도의 냉동고에 보관된다. 마치 SF의「냉동인간」처럼. 이씨는 이렇게 보존된 미생물들을 대학·기업체 등의 연구소가 요청할 때마다 분양해 준다. 말하자면 입양시키는 것이다. 이같은 분양요청은 최근 꾸준히 늘어 이씨는 하루평균 5∼6건 정도를 처리하고 있다. 그는 미생물 분양을 위해 「복사」작업을 꾸준히 병행하고 있다. 복사작업이란 나름대로 뚜렷한 특성을 지닌 「선조」미생물을 그대로 빼닮은 「자손」미생물을 만드는 것이다.
미생물들의 보모로써 이씨의 진가가 나타나는 대목은 미생물 식별부분. 미생물들도 사람처럼 성(속)이 있고 이름(종)이 있게 마련인데, 이씨는 미생물이 자라는 형태만 보고도 성정도는 맞힌다.
균을 잘 키워내는 것도 이씨의 남다른 재주. 대학·기업 등의 연구소에서 미생물을 분양 받고도 제대로 발육시키지 못해 이씨의 노하우를 빌려간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87년 2월 서울보건전문대 식품학과 졸업과 함께 막바로 유전공학연구소에 입사한 그는 자신이 「과학기술입국」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는 보람에 석·박사 출신 연구원 못지 않은 열정으로 실험실을 지키고 있다.
월 평균 급여 1백여만원에 부인·딸(2)과 함께 대덕 연구단지 인근에 살고 있는 그는 조만간 미생물 형태관련 사진집을 내는 것이 목표라고.<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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