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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례적으로 신중한 검찰/권영민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29일 김기춘 전 법무장관에 대한 불구속기소를 두고 검찰관계자들은 『검찰권 독립을 말할때 우리나라 검찰과 곧잘 비교되는 일본 검찰에서조차 전직 검찰총장을 법정에 세운 일이 없다』며 「읍참마속」이니 「환골탈퇴」니 하는 표현으로 스스로를 평가했다.
그러나 검찰방침이 발표되자 야당들은 기다렸다는듯이 『법정의 구현이라는 국민적 기대를 저버린 수사』라거나 『권력의 시녀라는 과거의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사』라는 혹독한 평가를 쏟아부었다.
검찰은 이를 『정치권의 정치적 의견이 사법적 판단기준은 아니다』거나 『수사관련자가 소속된 일부정당의 편향된 시각』이라고 치부한다.
검찰은 이같은 「편향된 시각」이 도청사건 처리와 달리 지나치게 신중해 소신없는 수사태도로까지 비춰졌던 「모임사건」수사초기부터 이미 싹트고 있었다는 지적도 받아들일 수 없을지 모른다.
검찰이 고발장접수후 부산기관장모임에 대한 법적처리를 마무리짓는데 꼬박 보름이 걸렸다.
자신들이 모시던 김 전장관을 수사하고 그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내려야 했던 수사검사들의 인간적 고뇌도 있었을 것이고 처벌의 폭이 너무 넓다고 논란이 돼온 선거법 규정을 적용하는데 법률검토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기관장모임 사건은 선거사범 수사에서는 이례적일 만큼 결정적인 증거인 녹음테이프가 고발당일 확보돼 녹취록이 작성됐으며 피고발인 조사도 순조롭게 이뤄졌다.
그러나 검찰은 또다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녹취록 작성·성문분석을 의뢰한데 이어 김 전장관이 빠진 현장조사를 하며 「전국 검찰의 절반이 넘는다」는 서울지검에서 선거사범을 전담한 공안부가 수사를 담당하고도 『똑 떨어지는 범죄혐의 적용에 이견이 있다』는 말만을 거듭했다.
한마디로 적극적인 수사·처벌의지를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말이다.
전직장관에 대한 전관예우를 고려했거나 이른바 기관장대책회의에 대한 세인의 시각을 검찰만은 모르고 있었는지 검찰은 사건초기 「죄가 되지 않는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는 듯했다. 의도적으로 연고지에 내려가 그 지역을 좌지우지 한다는 기관장들만 골라모아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언론인 등의 매수를 권유한 전직법무장관의 선거법 위반혐의를 밝히는데는 검찰이 즐겨쓰는 선거법의 「합목적적」해석이 필요한 순간이었음에도 검찰은 속이 뻔히 드려다보이는 「신중」만을 거듭했던 것이다.
한 검찰출신 재야법조인은 이 사건 수사중간쯤 『우리는 무엇때문에 법률적 판단을 컴퓨터에 넘겨주지 않고 법을 만들어 사람이 사람을 처벌하는 제도를 유지하는가를 검찰이 자문해야 한다』는 말로 자신이 몸 담았던 조직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했다.
검찰은 이제 「법률적 판단」보다 「법률외적 판단」에 검찰조직이 길들여진 것은 아닌지 한번쯤 되돌아보아 달라는 국민의 소리를 새겨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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