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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대선은 팬티까지 벗는 게임인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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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어려워 보입니다.”

27일 정오 여의도의 한 음식점. 상기된 표정으로 들어선 한나라당 홍준표 후보가 꺼낸 첫 마디다. 선두주자 이명박 후보의 ‘다스’ 관련 의혹 해소가 쉽지 않아 보인다는 얘기였다. 이 후보는 큰형 이상은씨와 처남 김재정씨가 소유한 기업 ‘다스’의 부동산 매입과 인근 지역 뉴타운 지정 관련 의혹으로 공방 중이다.

“필패론은 아니다. 그러나 현 상태로는 어려운 싸움이 될 것 같다.” 한나라당의 마지막 정책 토론회를 하루 앞둔 이날 홍 후보는 한나라당 집권 비전을 통해 ‘흠결 없는 제3후보론’을 내놨다. 자신을 염두에 둔 대안이다. “시골에서 올라와 검사에 3선 의원을 했다. 서울 시장 선거 때는 여기까지만 한 번 해보자 생각했는데, 집권해서 한 번 마음껏 뜻을 펼쳐보고 싶다는 포부가 생겼다.”

자칫 지루할 뻔 했던 경선의 청량제, 대선 이후의 당권. 홍 후보의 시선은 그 너머를 향해 있었다. “7월 중순 이후 대권을 향한 의지를 드러내겠다.” 빅2의 검증 갈등이 정점에 이를 때 국민과 당원들이 제3의 후보에게 눈길을 줄 것이라는 계산이다. 솔솔 들려오는 ‘이회창 대안론’에는 손사래를 쳤다. “이회창이 후보로 등장하는 순간 도로 차떼기 당이 된다.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누가 되든 정권 교체를 위해 돕겠다”면서도 혹시 모를 ‘그 날’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홍 후보. 그가 그리는 한나라당 경선과 2007 대선의 밑그림은 이랬다.

◇난관 명박=이 후보를 향한 홍 후보의 감정은 ‘애증의 쌍곡선’이다. 1999년 미국에서 지내던 시절 이 후보 부인에게 얻어먹은 김치 맛, 따뜻한 호의를 지금도 거론한다. 그러면서도 쓴 입맛을 다신다. 허물없는 사이인 이 후보가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홍 후보에게 등을 돌렸다. 오세훈 현 시장에게 힘을 보탰다. 이 후보의 사람됨과 정치적 판단을 지켜본 홍 후보는 “이명박은 콘텐츠가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용인술과 경영 능력에서는 대한민국 으뜸”이라며 후한 점수를 준다. 그러면서도 결정적 순간엔 냉정한 균형을 유지한다. 이 후보가 박근혜 후보와 경선룰을 두고 맞설 때 홍 후보는 “대도를 가라”고 꾸짖었다. 이 후보를 “쌀 한 섬 더 가지려는 만석꾼”에 빗댔다.

이날도 홍 후보는 “검증만 통과한다면 이명박은 최고의 후보”라고 말했다. “네거티브 공세만 이겨낸다면 무적”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대응을 잘 못하는 것 같다. 캠프도 지리멸렬하다. 상대 진영에 대한 정보 공유나 전략 공조가 이뤄지지 않는 듯하다”고 했다. “이명박이 아니라, 그의 지지율을 보고 모여든 사람들이 많아서”라고 했다.

그는 이 후보의 최대 취약점으로 ‘부동산’을 꼽았다. “부동산이 우리 사회를 2대 8, 가진 자와 못 가진자로 나눈다”는 생각이다. 그는 “국민정서가 부동산 관련 의혹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했다. “국회의원 선거에선 셔츠 하나만 벗으면 되지만, 대선은 팬티까지 벗는 게임이다. 지금 불거지는 갖가지 의혹 가능성을 이 후보가 정말 예측하지 못 했던 것일까.” 홍 후보가 내다본 이 후보의 검증 국면 타개 가능성은 밝지 않다.

◇부동 근혜=“박 후보 뒤엔 ‘시멘트 지지층’이 있다.” 25% 안팎, 고정팬들의 모임. 홍 후보가 분석한 박 후보의 현재다. 높은 지지율을보고 모여든 이 후보의 지지율은 거품처럼 흩어져도 박 후보의 지지율은 단단히 묶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만큼 반등의 폭은 제한적”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 후보 측이 관측하는 내달 역전 가능성 역시 “박근혜가 떠서가 아니라, 이명박이 주저앉으면서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박 후보가 여성 대통령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개인전이 아니라 단체전으로 선거를 치러야 한다.” 홍 후보는 박 후보를 향해 “일찌감치 ‘섀도우 캐비닛(Shadow cabinetㆍ그림자 내각)’을 공개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경제 대통령 이미지는 이 후보가 일찌감치 다 가져가 버렸다. ‘휴전선은요’ ‘대전은요’ 발언이 각인돼있지만, 국방과 안보 분야에선 여성 대통령의 한계를 극복하는 게 쉽지 않다.”

박 후보가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분야를 보완해 줄 원로들을 확실히 세워두라는 게 홍 후보의 조언이다. 홍 후보는 “박 후보가 경선에서 이긴다면 범여권 대통합은 급물살을 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경우 범여권의 선택은 이해찬 전 총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박 후보가 육영수 여사 사후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대신하던 시절 이 전 총리는 민주화 운동으로 징역 10년 형을 선고 받았다. 홍 후보는 “박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가 되는 순간 올 대선은 ‘민주 대 반민주’ 구도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안 준표=“집권에 뜻이 생겼다”면서 경쟁자들을 향한 조언이 길다. “당을 위해 빅2 검증 국면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면서도 ‘들일론(당을 위해 들일 나가듯 저격수로 애썼지만 정당한 평가와 보상이 없었다는 서운함)’을 말한다. 홍 후보의 로드맵은 그만큼 쿨(Cool)하다. “맹목적 권력욕을 담금질해 대권을 노리겠다”는 욕심과 “내가 경선에서 후보로 선출되지 않을 가능성이 90%”라는 현실적 판단을 이어 말한다. 빅2 중 누군가가 총리직을 제안할 경우를 묻자 “왜 총리야, 대통령을 봐야지.”라면서도 “내가 노동부 장관을 하면 노사분규를 없애고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혼잣말이 샜다.
홍 후보는 자신을 “한나라당의 대안”이라고 말한다. “누가 후보가 되어도 한나라당의 정책 기조가 바뀌지 않으면 대선에서 이기지 못한다”며 “서민과 대미 자주 어젠더를 제시하는 것은, 한나라당의 정책방향과 배치되지만, 외연을 확대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범여권 어떤 후보를 상대해도 이길 수 있는 콘텐트와 뒷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나는 지는 게임은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나와 붙어서 이긴 사람이 없다”고 했다. “잃을 게 없기 때문”이란다. “나는 시골에서 올라와 검사가 되고 3선 의원이 됐다. 무에서 유를 만들었다. 거칠 것이 없다. 애초부터 가진 게 없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걸고 싸운다.” 필승을 장담하는 배경이다. 여기에 20년 검사 생활, 10년의 정치 여정도 슬쩍 덧붙인다. “곧 5% 지지율을 넘어서고 7월엔 10%도 내다볼 것” 이라고 힘을 준다. “아, 노 대통령은 해양수산부 장관 8개월하고 대통령하지 않았어?”

◇전진 학규=탈당 전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홍 후보와 흉금을 터놓는 사이였다. ‘한나라 대 반 한나라 주자’로 대선 좌표를 조정했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진정성과 가능성을 폄하하지 않는다. 홍 후보는 “손 전 지사는 자신의 길로 잘 가고 있다”고 했다. “범여권의 후보 숨기기 가 끝났다”며 “이 후보가 한나라당의 후보로 대선에 나선다면, 범여권은 전략적으로 손 전 지사를 내세우게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범여권의 순혈주의가 손 전 지사를 쉽사리 허용하지 않겠지만, 이 후보가 나선다면 그를 전략적으로 선택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여권은 당원들도 프로”라며 “그들은 한나라당 경선 추이를 지켜본 뒤 ‘될 후보’를 밀어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올 대선이 백중세를 이룰 것으로 전망했다. 2002년 대선의 교훈이다. “당시 이회창 후보의 지지도는 김대중 후보의 지지도를 3배 이상 웃돌았다. 그러나 57.7%대 13.5%였던 구도에서도 한나라당은 졌다.” 홍 후보는 “누가 되든 경선 후 한나라당 후보는 40~50%의 지지율을 얻고, 범여권 단일 후보는 20%대의 지지율에서 싸움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라고 했다.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율은 내려오는 것만 남았고, 범여권 후보는 치고 올라가는 수순”이라는 것. “이번 대선은 노무현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한나라당 대세론’에 그가 눈썹을 치켜세우는 배경이다.

☞섀도우 캐비닛=야당이 자신들이 정권을 잡는 경우에 대비해 각료 후보를 정하고 조직한 일명 ‘그림자 내각’이다. 양대 정당제가 발달한 영국 정가의 전통이다. 야당은 정권획득에 대비해 수상 이하 각 각료로 예정된 멤버를 정해두고, 여당에서도 야당의 섀도우 캐비닛에게는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관행이 있다.

박연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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