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자본 몰려온 “개방원년”/되돌아본 올해 국내증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빈혈증시에 부양책 10여차례/잇단 부도·정치권 외풍에 몸살
주식시장 개방 첫해를 맞았던 올해 우리 증시는 어려운 경제여건속에서도 88년이후 4년만에 처음으로 연말주가가 연초주가를 상회,대세상승국면으로 다시 진입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
특히 거래량이 지난해보다 70% 가량이나 늘면서 사상처음으로 하루평균 2천만주를 넘어서 주식거래의 대중화를 성큼 앞당겼다.
채권시장에서도 시중실세금리가 큰 폭으로 하락,선진국과 같은 한자리수 금리가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한해였다.
그러나 상장기업들의 잇따른 부도와 국회의원 대통령을 뽑는 양대 선거를 치르면서 끊임없이 터져나온 정치권 악재,수출부진·무역수지 적자 등 여전히 불투명한 실물경기는 올해 내내 증시의 걸림돌로 작용했고 당국은 10여차례에 걸쳐 증시부양을 위한 각종 고육지책을 내야했다.
◇시장개방=외국인투자는 올해 증시의 최대변수였다. 외국인들은 연초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주가를 2월초까지 단숨에 연중최고치로 밀어올렸다. 이들은 증시가 침체기에 접어들었던 6,7월 두달동안만을 제외하고는 매달 매수우위를 보여왔으며,특히 10월이후 매입규모를 대폭 늘려 주가가 재상승하는데 기폭제역할을 했다. 외국인들은 올들어 지난 22일까지 2조3천억원어치를 사고 8천4백억원어치를 팔아 1조5천억원에 가까운 순매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국내 상장시가총액의 2%에 가까운 것으로 지난 60년대 일본증시가 개방된뒤 5년동안 유입됐던 외국자금이 시가총액의 1%가 채 안됐던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외국인들은 현재 합작 등 직접투자분을 합칠 경우 국내 상장주식총액의 4.7%인 3조9천억원어치를 보유하고 있으며 65개종목은 이미 투자한도(10%)를 채운 상태다.
외국인들은 특히 시장분위기보다는 개별종목의 내재가치를 중시하는 과학적·합리적 투자기법을 선보이며 저PER(주당 수익비율)주혁명을 불러일으켰다. 이 바람에 중·소형주가가 급등,태광산업 주식값이 지난 5월 한때 주당 20만원을 넘는 초유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해외자금을 대거 유입하면서 통화량이 급증하는 등 부작용을 빚기도 했는데 이와 관련,단기차익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핫머니」논쟁이 일었으며 아직도 우려가 남아있다.
◇증시부양책=기관들이 파는 것보다 사는 것을 많도록 유지케한 8·24대책을 비롯,10여차례의 각종 부양책이 잇따랐다.
1월말 외국인투자 범위확대를 필두로 5월의 투신사에 대한 한은특융지원,6월의 근로자 주식저축제도도입 등 이들 대책들은 나름대로 증시안정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8·24대책이후 기관들이 매수우위로 전환한 것은 증시자금확대라는 직접적인 효과외에 일반투자자들을 심리적으로 안정시키는 역할도 해 가을이후 상승장세의 밑거름이 됐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데에는 다시한번 생각해볼 여지가 있으며 기관매수우위방침도 언제까지 유지할 것인가가 관심이 되고 있다.
◇상장기업 부도=올들어 부도가 나거나 법정관리를 신청해 관리대상종목에 편입된 상장기업은 모두 20개사로 지난해의 13건보다 50%이상 늘어났다.
지난 90년 대도상사이후 상장기업의 부도·법정관리신청은 모두 34건에 이르고 있는데 경기침체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지난 88,89년 기업공개 드라이브정책의 후유증 때문이기도 하다. 상장사의 부도는 투자자들에게는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으며 증시를 위축시키는 요인도 되고 있는데 지난 4월 상장된지 석달밖에 안됐던 신정제지의 부도는 증권계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특히 이 회사의 대주주들이 공개직후 주식을 대량 매각한 것으로 밝혀져 공개정책의 신뢰성에 큰 흠집을 남겼고 공개제도가 대폭 수술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편 각 상장사의 대주주들은 올해 주식을 3천2백만주나 내다판 반면 매입은 1천3백만주에 그쳐 주가하락을 부채질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치권외풍=총선·대선이 겹쳤던 올해에는 증시가 정치권악재의 소용돌이에 크게 휘말려야 했다. 연초 국민당 창당을 필두로 민자당의 대권후보경선과정에서의 갈등,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의 출마설 및 불출마선언 등 10여건의 크고 작은 사건들이 주가에 반영돼 흐름을 돌려놓았다. 돌발적인 악재가 잇따르자 증시에서는 『최대의 부양책은 정치를 잘하는 것』이라는 푸념까지 나왔다.
◇종목별 재편=올해 주가는 종합주가지수 4백50대까지 떨어졌다가 6백90선을 넘어서는 등 진폭이 컸고 업종·종목·규모별로 주가가 재편되는 현상도 가져왔다.
상반기에는 섬유 등 중·소형 저PER주가,하반기에는 국민·금융주 등 대형주가 강세를 보였는데 전체적으로는 중·소형주의 상승세가 대형주를 압도했다.
◇주식발행시장=올해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조달규모는 지난해보다 33%가 줄어든 1조7천8백여억원에 그쳐 86년이후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기업공개는 8건,8백억여원으로 지난해보다 64%가 줄었고 유상증자도 1백33건,1조7천여억원으로 전년대비 30% 가량 줄었다.
이는 부실공개를 막고 주가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당국이 공급물량을 억제했기 때문으로 기업의 입장에서는 자금난이 심화되는 요인이 되었다.
◇채권시장=올해 채권발행액은 총 58조원으로 지난해보다 22.6%가 늘었다. 유형별로는 국채가 32.5%,특수채(금융·리스채 등)가 60.4%,통화채가 18.5%가 늘어난 반면 회사채는 오히려 당국의 발행물량조절 및 설비투자 수요감소 등으로 14.6%가 줄었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금융기관들이 지급보증을 꺼려 총회사채 신청물량의 3분의 1인 1조5천여억원어치밖에 발행하지 못했고,이 때문에 전체 회사채 발행물량가운데 차지하는 비중도 15%에 그쳐 대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민병관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