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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간 '자기야' 대신 '여보' '당신' 불러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우리나라 부부간의 전통적 호칭인 ‘여보’ ‘당신’이 사라져 가고 있다. 좋은 호칭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사라져 가고 근원을 알 수 없는 이상한 호칭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더욱 안타깝다.

‘여보’ ‘당신’은 부부간에 서로를 부를 때 쓰는 애칭이고 정감 어린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요즘 엉뚱하게도 ‘자기’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국어 사전에 따르면 ‘자기’는 ‘그 사람 자신’이란 말로 ‘나’ ‘제 몸’ ‘저’의 뜻으로 쓰인다. ‘여보’는 본래 ‘여기 보오(보십시오)’에서 온 말이니, 부부간 호칭으로 적절하고 별 하자가 없는 말이다.

 ‘여보’ ‘당신’에는 서로에 대한 존경심이 담겨 있는데 ‘자기야’에는 서로를 낮잡아 보는 느낌이 있다. 요즘 부부간에 서로가 '너나들이'하며 지내는 경향이 있는데, 얼핏 친구처럼 다정하게 보이는 것 같으나 인격 존중 면에서는 그렇지 않다. 말은 인격의 표현이다.

존대어를 쓸 적엔 상대편 인격을 존중하게 마련이다. 부부는 인격을 존중하며 살아야 화합된 가정을 이룰 수 있다. 예부터 우리나라의 양반 집안에선 부부간에도 존대어로 대화를 했다. 최근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급상승하고 있는 데는 상대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자기야’ 같은 하급 호칭이 판을 치는 현상도 일조하고 있는 것 아닐까.

 ‘여보’ ‘당신’이 ‘자기야’로 바뀌게 된 것은 TV 연속극의 영향도 크다고 본다. 연속극에 등장하는 부부들이 너나없이 ‘자기야’로 호칭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심지어 최근에는 ‘남편’을 ‘오빠’로 호칭하는 해괴한 풍조까지 유행하고 있다.
 물론 시대에 따라 새 말이 생성되고 소멸되기도 하는 등 말에도 역사성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아무 하자도 없고 의미도 고운 우리말을 TV 같은 매체에서 자의로 바꾸는 것은 곤란하다.

이병수 부산시 부산진구 개금3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