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통령에 바란다/강만길 고려대교수·한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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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북한은 적”인식 청산필요/성장보다 분배 우선해야
제14대 대통령선거가 가지는 의미를 보기에 따라 여러가지로 말할 수 있겠으나,민족사가 식민지시대와 분단시대로 이어졌던 불행한 20세기를 마감하는 대통령을 뽑는다는 점,30년간 지속된 육군대장 출신 대통령시대를 마감하고 다시 민간출신 대통령시대를 맞는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또 제14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람이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연결된다.
○새로운 민족관 확립
30년만에 선출된 민간출신대통령은 무엇보다 통일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할 책무를 지고 있다. 과거 육군대장 출신 대통령들도 나름대로의 통일방안들을 내놓았고 구체적으로 「7·4공동성명」「7·7선언」 등을 발표했는가 하면 화해·협조와 불가침을 다짐하는 조약을 맺으면서 북한쪽에 대해 「형님과 같이」의연한 자세로 양보해서라도 민족사적 과제로서의 통일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것이라고 다짐해왔었다.
그러나 분단 40년이 넘은 지금까지 한 사람의 이산가족 고향을 가보지 못했고 헤어진 가족들과 편지 한장 주고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민간출신 대통령과 군인출신 대통령이 다른 점은 아무래도 통일문제 및 북한과의 문제에서 확연하게 드러나야 할 것 같다. 민족의 다른 한쪽을 군사적 적으로 간주하는 인식 자체가 청산되고 평화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적극적으로 정책을 전환시키는 일이 요청된다.
평화통일을 가로막는 모든 법령은 개폐되어야 하고 그런 법령에 의해 구금돼 있는 모든 사람들은 석방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20세기를 마감하는 대통령으로 민족통일의 길을 구체적으로 열어 놓음으로써 21세기를 분단시대가 아닌 통일의 시대가 되게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일들은 30년만에 당선된 민간출신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민족관이 갖추어졌을 때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의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정치인들은 일반적으로 북한지역을 포함한 전체 민족주의적 입장이 아닌 분단국가주의적 입장에서 한정된 정치를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그 오랜 틀에서 벗어나 민족인식 내지 정치판의 지평을 전체 민족사회로 확대시킬 수 있을때 비로소 분단시대를 마무리하는 대통령으로서의 사명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시급한 경제활성화
14대 대통령선거는 큰 쟁점이 없는 점이 특징이라고 말해졌지만 그런 속에서도 유권자들의 관심이 가장 높았던 부문은 역시 경제부문이었던 것 같다. 따라서 서민사회가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가장 절실한 문제도 경제활성화 문제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성장이나 활성화만이 문제를 모두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며 정책의 근본방향을 전환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지난 30년간 지속된 군사문화적 특색이 경제정책에서도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 하기 쉽고 전체주의나 성과주의 위주로 되기 쉬운 경향이었다면,그것을 극복하는 민간출신 대통령의 경제정책 방향은 민주화와 분배정의의 실현이 최우선 과제로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문제들을 대통령 혼자 해결할 수는 없으며 결국 어떤 사람을 쓰느냐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에는 바꾸어 보자」는 구호를 내건 정당도 있었지만 8·15후 여러번의 정치적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치계나 행정계는 계속 분단체제적·군사문화적·보수적 사고구조와 행동거지에 젖은 사람들로 채워져 왔다. 그리고 이번 선거과정에서도 드러난 것과 같이 그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지역감정 부추기기를 비롯해 온갖 술수를 다 쓰고 있다.
○새 정치엔 새 사람을
하나를 보면 열가지를 안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사석이라 해도 중요한 국정의 한 부분을 책임졌던 사람과 수백만 인구의 도시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쓰는 말투가 불량배들의 그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음을 보고 나라와 민족문제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개탄해 마지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정치를 하려면 새로운 사람을 고루 써야 한다는 평범한 이치를 새 대통령에게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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