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집안싸움 '파열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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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금속노조가 자동차.조선사 등 대기업의 참여 속에 지난해 11월 재탄생한 지 1년도 안돼 자중지란에 빠졌다.

금속노조의 지침에 의해 25일부터 시작된 파업에 현대.기아.GM대우 등 주력 부대가 모두 불참했다. 노조의 지침을 어긴 조합들이 생긴 것이다. 금속노조는 이들 노조지부를 징계한다고 하지만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 파업 결정 과정에서 금속노조 스스로가 규약을 어겼기 때문이다. 금속노조 규약 69조에는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한 전국 단위의 쟁의 행위는 재적 조합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하되, 그 방식은 조합원의 직접.비밀.무기명 투표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파업에서는 이 규정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부분 파업에 불참한 현대차 노조의 조합원들은 파업 결정이 투표 없이 이뤄진 점을 들어 강하게 반발했다.

정갑득 금속노조 위원장은 8일 중앙위원회에서 "투표 절차를 거치자"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 위원장의 의견에 동의한 사람은 90명의 중앙위원 중 단 세 명에 불과했다는 후문이다. "밀어붙이자"는 강경파에 밀린 것이다. 이 상황에서 '아래로부터의 봉기'에 의해 지도부의 의지가 꺾였다.

따라서 파업 실패에 따른 책임 소재와 징계 여부를 놓고 금속노조 내 강.온파 사이의 치열한 다툼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금속노조 집행부가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거나 사법처리될 경우 정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국민파(온건파) 지도부가 좌파(강경파)로 대치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금속노조가 지금보다 더 강경한 노선을 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속노조와 산하 노조 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 산하 노조의 금속노조 탈퇴 도미노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실제로 현대차를 비롯한 금속노조 소속 각 지부.지회 홈페이지에는 탈퇴를 권고하는 조합원의 글이 쇄도하고 있다. 철강업종 노조들은 지난달 31일 열린 대표자회의에서 다음달 15일 철강산별노조를 출범시키기로 결의했다. 일부 업종에서 이 같은 금속노조 탈퇴 움직임이 벌써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자칫 자동차.조선사 노조의 참여로 국내 최대 노조가 된 금속노조가 쪼개질 판이다.

김기찬 기자

◆금속노조=2001년 자동차 부품회사와 중공업회사 중심으로 설립됐다. 당시 완성차 4사와 대우조선.미포조선 등 대형 사업장이 가입하지 않아 반쪽짜리 산별노조라는 평을 받았다. 지난해 완성차 노조 등 대형사업장이 조합원 투표를 거쳐 금속노조에 가입한 뒤 국내 최대의 단일노조로 재탄생했다. 현재 240개 사업장에 14만3000여 명의 조합원이 가입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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