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위기 벗도록 도와줘야"-7월 결성「팔기회」회장 나전모방 남재우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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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정부 정책이 어떠니 금융관행이 어떠니 해도 기업 도산의 1차적인 책임은 기업주 자신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업주를 마치 범죄인 취급해 설 땅조차 없게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지난7월 부도경험이 있는 중소기업인들을 모아「팔기회」라는 독특한 모임을 결성, 부도기업을 재기시키고 부도 위기의 기업을 도와주고 있는 (주)나전모방의 남재우 사장(52).
이달 초 한국기체 공업의 구천수 사장이 목숨을 끊었을 때 일면식도 없었으면서 고인의 빈소를 찾기까지 했던 그는『한번이라도 나를 찾아왔더라면』하는 말을 지금까지도 되뇐다.
물론 그리고 해서 뾰죽한 수는 없었겠지만 비슷한 고난을 겪었던 경험자의 입장에서 최소한 죽음까지는 막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일단 부도가나면 채권단에 몰리면서 친구·친척 등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돌아서게 마련이고 누구하나 따뜻하게 격려해 주는 사람이 없죠. 부도 기업인들이 자살충동에 빠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남 사장은 실제로 이번 사건을 예견이나 한듯 지난달 25일 팔기회 명칭의 어원인「칠전팔기」에서 따와 번호가 액 7878인「부도기업을 위한 24시간 구명전화」를 설치, 밤낮으로 걸려오는 상담전화에 응하고 있다.
팔기회는 84년 그가 나전모방을 인수한 뒤 무리한 트자 등으로 8억원이 넘는 부도를 낸데다 공장이 침수되는 수재까지 당해 큰 실의에 빠져있을 당시 부도기업인의 용기를 촉구하는 일본 팔기회장 노구치씨가 쓴 책을 접하면서 착안한 모임.
초기에는 정부에 대한 압력단체 혹은 금융지원을 받아내기 위한 모임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지만 상부상조의 순수함이 알려지면서 회원들도 급증, 최초 25명의 회원이 1백53명으로 늘어났다. 물론 재산을 빼돌린 뒤 고의부도를 내는 악덕기업주는 일체 사절이다.
『활동은 주로 부도경험이 있는 회원들이 부도상태에 있는 회원들에게 경영전반에 걸친 조언과 격려를 해줌으로써 재기의욕을 북돋우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별다른 금융지원이나 큰 혜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례발표회 등 모임 때마다 서로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유일한 자리라는 점 때문인지 모임은 곧잘 눈물바다로 변하기도 한다.
정부도 직후의 처리가 가장 중요합니다. 제정신을 못 차리고 이리저리 흔들리다보면 도피하기가 일쑤인데 이 경우 가족은 물론 채권자·종업원·관련회사에까지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도덕성에 먹칠을 하게돼 영원히 재기가 불가능해지죠.」
이 때문에 그는 늘 회원들에게 재기를 바란다면 부도직후 양심에 따라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점과 부도를 막기 위해 ▲항상 긴장한다 ▲남의 꾐에 빠지지 않는다 ▲경기 좋을 때 저축한다는 자신의 좌우명을 늘 주지시킨다.
『부도기업을 살리는 것은 기업주의 축적된 경영자원을 되살리고 피해도 줄인다는 점에서 나라 전체에도 이익』이라는 신념을 갖고있는 그는 기업부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기업주에게도 도움을 주기 위해 조만간 모임운영을 통해 얻은 지식과 사례 등을 모아 책자로 발간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이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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