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뒤로 미뤄진 「기관장 수사」/김용일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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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음용기사장 등 5명을 6일 구속함으로써 일단 마무리 된 현대계열 현대종합목재의 불법선거운동 수사는 검찰이 공명선거 관리를 위해 법집행을 얼마나 신속하게 할 수 있는지 보여준 좋은 예였다.
현대측은 「편파수사」라며 이의를 달았지만 검찰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찾아낸 「물증」 앞에 「법대로」의 처리를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15일부터 검찰이 본격수사에 나선 「부산지역 기관장 모임」사건은 따지고 보면 현대목재건보다 훨씬 간단한 사안일 수 있다.
혐의사실을 뒷받침할만한 물증들이 대부분 드러나 있어 통상 감춰져 있게 마련인 「사실관계」들을 들춰내는 수고를 크게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건은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현대수사보다 더 신속하게 사법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으리란 것이 일반의 기대다.
그러나 16일 검찰이 밝힌 수사계획은 이같은 예상과는 다소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
검찰은 이날 문제의 녹음테이프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맡겨 분석하는데 4일이 걸린다고 말했다. 사실상 수사를 대선 뒤로 미루겠다는 뜻이다.
검찰의 이러한 방침은 물론 수사상 불가피한 것일 수도 있고 여론이 들끓는다고 적법절차를 무시하고 성급하게 처리할 일은 더욱 아니다. 하지만 검찰의 설명에는 어딘가 개운찮은 뒷맛이 남는다.
15일 국민당의 발표현장에서 공개된 테이프의 녹음상태는 대체로 양호해 누구의 목소리인지 금방 판별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무엇보다 수사의 핵심이 될만한 내용들이 이미 언론에 공개됐지만 당사자 어느 누구도 사실과 다르다는 이견을 제기한 사람이 없다. 「물증」으로서의 타당성이 이미 검증이 됐다는 얘기나 같다.
그런 2시간짜리 녹음테이프의 재녹취에만 4일이 걸리고,그것을 다시 분석·검토한 이후에 실질수사에 착수하겠다면 이런 자세를 국민들이 과연 어떻게 볼 것인가.
수사를 며칠 뒤로 미룬다고해서 검찰의 신뢰성 문제까지 들먹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며칠」속에는 대선이라는 중대한 분수령이 있다.
국민들은 이번 사건이 선거만 지나면 흐지부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운 것이다.
검찰이 수사의지에서 의심을 받는다면 이번 사건을 검찰의 명예와 법제도의 권위회복 계기로 삼기는 바랐던 국민의 기대가 어떻게 바뀔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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