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천안문사태 재평가 움직임/숙청됐던 주요인물 속속 복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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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식인들 「금기」깨고 공개적 논의 활발
89년 천안문사태 책임으로 실각·좌천된 중국의 당·정·군 주요 지도자들에 대한 복권 또는 재등용이 소리없이 진행되고 있다. 또 그동안 금기시 돼온 천안문사태에 대한 논의가 최근 지식인들 사이에서 연쇄적으로 이뤄지고 있고,논의내용이 언론을 통해 일반 대중에게 전달되고 있다.
천안문사태는 불과 몇개월 전까지만 해도 국가안위 차원에서 금역으로 간주,공식·비공식석상을 막론하고 논의 자체를 원천봉쇄 했던게 사실이다. 따라서 최근들어 나타나고 있는 이같은 변화는 중국 지도부 묵인 아래 천안문사태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불러일으키면서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있다.
중국 지도부가 천안문사태와 관련해 숙청한 주요 간부들을 본격적으로 복권 또는 재발탁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0월 개최된 중국 공산당 제14차 전국대표대회(14전) 이후부터. 천안문사태때 민주화요구 시위를 강경진압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축출당한 후치리(호계립)를 기계전자공업부부부장(차관급)으로 원대 복귀시킨데 이어 자오쯔양(조자양) 전총서기의 고위보좌관으로 7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던 바오통을 석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 청년보는 조계립 복직에 대해 『영웅이 무술을 발휘할 곳을 찾았다』『지난 80년대 「미래의 총서기」로 각광받던 떠오르는 별과도 같은 인물로 최근 가장 열심히 일하는 각료』라고 찬양했다.
14전에서 40대의 젊은 나이로 일약 정치국 상무위원에 발탁된 후진타오(조금도) 전티베트 자치구 서기에 대한 파격적 인사도 이와 무관치 않다.
조금도는 후야오방(호요방) 전총서기,호계립과 함께 「3호」로 불리며 개혁과 트리오로 각광받았던 인물로,그의 상무위원 기용은 호계립을 대신한 카드성격이 짙다. 조를 복권시키지 않기로 한 마당에 호계립의 상무위원 기용은 논리상 모순이므로 대신 호금도를 발탁한 것이란 분석이다.
최근 단행된 군부개편에서도 천안문사태때 좌천당한 인물들을 대거 중용한 것은 천안문사태에 대한 중국 당국의 입장에 상당한 변화가 일고 있다는 관측을 강하게 불러일으키고 있다.
인민해방군은 지도부 개편에서 천안문사태때 소극적 진압을 했다는 이유로 광주군구에서 제남군구로 좌천됐던 장완녠(장만연)과 성도군구에서 난주군구로 밀려났던 푸취안유(전전유)를 총참모장과 총후근부장으로 각각 승진시켰다. 총참모장과 총후근부장은 총정치부장과 함께 「군 3총부」로 불리며,중국군을 실질적으로 총괄지휘 하는 요직중의 요직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기용은 그 정치적 의미가 매우 크다.
천안문사태후 대규모 숙청에 희생됐던 당 및 정부관리,지식인들이 지난 11월말 회동해 『89년 숙청은 개혁을 지지하는 많은 인사들을 대상으로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들이 개혁에서 자기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도록 했다』면서 숙청작업에 대한 지도부의 잘못을 시정하라고 촉구했고 언런들도 이를 자세히 보도했다.
중국 당국은 이와 관련,『조 전총서기가 실수를 저질렀다는 89년 결정과 그의 해임은 계속 유효하다』는 당 제13기 중앙위 전체회의 결정을 들어 천안문사태에 대한 기존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지도부가 천안문사태와 관련된 숙청자들을 하나 둘 복권시키고 지식인들의 천안문사태 논의를 허용하고 있는 것은 불과 몇개월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로 중국 지도부가 천안문사태 재평가를 조심스럽게 허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된다.<문일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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