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이 눈앞에”… 열뿜는 단상(대선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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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또 여소야대 되면 나라망한다” 강조 김영삼/“어려울 것 같으니까 다시 용공 모략” 김대중/“내각제를 해야 책임정치 가능하다” 정주영
○대구·경북이 승패 열쇠
▷김영삼후보◁
12일 대구 수성천 고수부지에서 열린 김영삼민자당후보의 유세에는 청중들이 폭 1백여m,길이 3㎞가 넘는 고수부지를 가득 채우고 천변 양쪽도로와 건물옥상에까지 늘어섰다.
이 때문인지 김 후보도 유세를 시작하자마자 목이 메어 연설이 잠깐 중단하는가 하면 시종 상기된 목소리로 유세예정시간을 10여분 넘기면서 『이 김영삼이가 대통령이 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여러분의 결정에 달렸다』는 말을 되풀이.
김 후보는 유세 첫머리에 『진실로 감사한다. 수성천변에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모인 것은 역사이래 없을 것』이라며 『승패의 열쇠를 쥐고 있는 대구시민·경북도민 여러분앞에 이 김영삼이가 섰다』는 대목에서 울먹이는 등 「읍소」.
대구지역 선거대책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김용태민자당총무는 『오늘 대구유세가 이번 대선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대구·경북의 대세도 오늘로 결정났다』고 주장.
김 후보는 『어느 후보는 여기와서 돈으로 표를 사려하고,또 어떤 후보는 호남푸대접론을 내세우다가 이제와서는 영남이 제일 낙후됐다고 한다』며 정주영국민당후보와 김대중민주당후보를 겨냥한뒤 『이는 여러분의 정치의식과 자존심을 잘못 읽은 것』이라고 주장.
찬조연사로 나선 이만섭고문은 『여러분이 정주영씨를 많이 찍으면 김대중씨가 당선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며 『다소 섭섭하더라도 김영삼후보를 밀어달라』고 호소.
정호용의원은 『다시 한번 여소야대가 되면 나라가 결딴난다』며 『텁텁하고 화끈한 경상도 주민들은 경상도사람 김영삼을 확실히 밀어주자』고 거듭 강조.
이날 유세장에는 비교적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유세시작 3시간쯤 전부터 수성천변을 따라 수㎞에 달하는 행렬을 이루며 인파가 몰려들기 시작,부근교통은 완전 마비상태.
유세장에는 『0303소식통 압승소식 가져온다』『오직 하나 김영삼』『나는 12월18일 03과 함께』는 등의 각종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 수백개와 김영삼수기 등이 물결을 이루는 등 고조된 분위기. 특히 김 후보가 무개차를 타고 연단으로 향하자 오색풍선 수천개가 하늘을 수놓았으며 청중들은 「김영삼·대통령」을 연호.
이어 김 후보가 연단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인사하자 청중들은 일제히 『김영삼을 청와대로』라는 연호로 화답.<김두우·박의준>
○조명 등 켜놓고 유세강행
▷김대중후보◁
김대중민주당후보는 12일 오후 인천과 서울 세군데에서 눈과 비가 계속 뿌리는 가운데 가진 유세에서 인공기를 등장시켜 자신을 공격한 민자당의 선전물을 더이상 참을 수 없다는듯 『김영삼후보가 급하니까 우리를 용공으로 모는 악랄한 방법을 동원하는데 단연코 용서할 수 없다』고 강하게 맞받아쳤다.
오후 2시 인천시청앞 광장유세의 청중은 비가온 탓인지 당초 3만명 정도가 몰릴 것이라는 선전과 달리 수천명 정도에 그쳤는데 서울 목동 오목교 고수부지 유세장은 일부 열성지지자들이 장화를 신고 우의를 입는 완전무장을 갖추고 나와 연설을 열심히 들었다.
인천유세에서 김 후보는 『김영삼후보가 「김대중씨는 30년친구이며 민주주의를 위한 혈맹의 친구」라고 하더니 이제는 사상이 이상하다고 모략하고 있다』며 『선거에 질 것 같으니까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수법을 쓰는데 분노와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언성을 높였다.
김 후보가 『이런 사람이 정권을 잡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용공으로 몰겠느냐』『이것 하나만 봐도 김영삼후보가 당선돼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하자 청중들은 『옳소』『네』하며 함성.
이것만으로 부족한지 이어 김 후보는 『야당하다 국민을 업수이 여기고 여당으로 바꿔 국민을 배신한 사람을 반드시 낙선시켜야 한다』고 호소하고 『나는 40년간 독재자에게 굴복하지 않았으며 좋은 정치를 펼치기 위해 공부하고 준비해왔다』고 강조.
김 후보는 인천유세후 곧바로 서울 목동 고수부지로 와 『김영삼후보가 TV토론을 하겠다는 약속을 안지켜 빗속에서 여러분들이 고생하고 있다』면서 『국민들이 안방에서 편안히 후보들의 입장과 실력을 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
이어 오후 5시 구로중학교 유세는 대형조명 등을 켜고 진행했는데 굵은 빗줄기속에서도 연단앞쪽 청중 수백명은 우산을 내린채 진흙탕 운동장에 쭈그리고 앉아 듣는 열성을 보였는데 김 후보가 『김영삼후보는 오늘의 잘못된 정치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외치자 박수로 호응.
그는 『이제 44년 소수특권층의 집권이 끝나고 중산층·중소기업인·노동자·서민들이 살맛나는 세상이 열리게 됐다』고 열변.<박보균·조현욱·최훈기자>
○연설전 이 후보 사퇴 알려
▷정주영후보◁
정주영국민당후보는 12일 여의도유세에서 눈·비가 뒤섞인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종 흡족한 표정으로 지켜본뒤 마지막 연사로 등장,평소보다 긴 20여분간 높은 어조로 유세.
정 후보는 유세에 앞서 김동길최고위원이 『14대 「대통령후보」가 아니라 14대「대통령」이신 정주영이라는 사람을 소개한다』고 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넓은 연단앞쪽을 가로지르며 청중들의 환호에 화답.
정 후보는 상당히 격앙된 목소리로 연단에 선뒤 먼저 이종찬의원의 후보사퇴사실을 고지.
이어 정 후보는 평소의 즉석연설과 달리 준비된 원고를 계속 지켜보며 그동안의 공약을 정리해 낭독.
정 후보는 「정치개혁」을 앞세운뒤 『내각제만이 확실한 책임정치를 가능하게 하고 지역감정을 해소한다』고 내각제를 예찬. 그러나 정 후보는 당에서 예고한 연설내용중 『집권 2년6개월후 내각제개헌을 하고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는 부분은 생략.
정 후보는 오히려 『집권 5년내에 국민모두 2만달러의 소득을 거둘 수 있도록…』운운하며 집권 5년후 경제공약을 약속.
이날 유세장에는 현대그룹 계열사직원들이 대거 나와 「정주영=현대」의 운명공동체적 단결력을 입증.
눈·비가 뒤섞여 내리는 바람에 일반 청중들의 다수가 유세장을 빠져나가는 것과는 달리 현대직원들은 「민족기업 현대탄압,국민경제 흔들린다」는 등의 플래카들와 피킷 등을 든채 시종 창업주 정 후보의 유세에 「대통령」이라는 박자를 맞추며 끝까지 호응.
현대는 이날 대회청중동원을 위해 직원들이 가족·친지·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참석을 권유했으며 하청기업체에도 협조를 요청했다는 것.
이날 행사장은 당초 예상된 1백개 블록의 절반에 해당하는 50개의 블럭으로 구분,지역·지구별로 나뉜 각 블록을 행사 4시간전인 오전 10시부터 나온 지역책임자들이 행사참가자들에게 「민자당의 검은 자금출처를 조사하라」「민자당보로 전락한 불쌍한 조선일보」 등의 구호가 적힌 녹색스카프와 깃발,마분지로 만든 깔개 등을 나누어주느라 부산한 모습.
청중들의 대다수가 사전에 통지받은 지역블록으로 일사불란하게 찾아가는 모습이어서 유세장이라기보다는 한 집단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특수모임같은 인상을 강하게 풍겼다.<유상철·고대훈·이현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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