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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시, ‘죽음의 춤’ 아직 멀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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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 23면

“한국 주가는 더 오른다. 쉬었다가 갈 뿐이다. 다만 오르기만 하는 증시는 세상에 없다. 언젠가는 큰 폭의 조정이 오겠지만, 현 상승 국면은 좀 더 이어질 것으로 본다.”
파버는 한국 증시에 대해 이처럼 간명하게 견해를 밝혔다. 그는 이런 어조로 1987년 10월 미국의 블랙 먼데이와, 97년의 동아시아 외환위기, 2002년 원자재 가격 급등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지난 2월 초에는 “중국과 인도 등 이머징 마켓이 이르면 2주 뒤에 조정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2월 말 중국 증시가 급락했다.

긴급 인터뷰 ‘닥터 둠’ 마크 파버의 진단

“한국 주가가 절정에 이르렀다는 느낌은 아직 없다. 조정이 예상되긴 하지만, 강하게 느껴지는 단계는 아니다. 지금으로선 주가의 피크 시점을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파버는 ‘느낌’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다. 그가 얼마나 자신의 직관에 의존하는 인물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경제학 박사답게 논리적 설명을 빼놓지 않았다. 한국 증시가 추가 상승할 수 있는 근거로 돈이 계속 몰리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비관론자인 마크 파버의 홈페이지에 있는 ‘죽음의 춤’ 그림.

“한국의 개인투자자들이 엄청난 자금을 주식형 펀드에 투자하고 있다. 홍콩과 싱가포르에 있는 내 친구들도 한국 주식을 매력적으로 보고 사들이고 있다. 주식시장은 태풍과 비슷하다. 대양의 수증기가 계속 유입되는 동안 태풍 구름이 불어나듯이 자금이 몰려드는 동안 증시는 커진다(상승한다).”중국 증시도 마찬가지라고 파버는 말했다. 수많은 개인 투자자가 몰려드는 덕분에 돈줄이 아직 마르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그는 돈의 힘으로만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은 한계에 부닥칠 것이며, 주식값과 실물경제(펀더멘털)의 괴리가 점점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이 2000년 이후 통화 완화 정책을 공격적으로 쓰는 바람에 전 세계가 유동성 풍년을 맞았다. 주식과 채권ㆍ부동산ㆍ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이 점이 과거 거품과 다른 점이다. 과거에는 일부 종목 또는 특정 자산 가격이 급등했을 뿐이다. 그러나 과거나 현재나 돈의 힘에 의지해 주가가 펀더멘털에서 벗어나 급등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현재 자금 풍년이 미국에서 처음 시작됐기 때문에 미국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파버는 말했다. “최근 30년 동안 대체로 미 주가와 달러가치는 반대로 움직였다. 최근 미 무역적자가 줄고 미약하나마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미 주가가 앞으로 어떨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파버는 주가 상승 국면을 최대한 활용하는 공격적인 플레이어다. 그는 지난 2002년 베트남의 주식과 부동산 가격 상승을 점치고 대량으로 사들여 큰 재미를 봤다.
반면 그는 급락 직전에 절묘하게 시장을 탈출하기로도 유명하다. 주가 급락을 예상하고 너무 성급하게 팔아치우는 바람에 고수익을 내지 못하는 다른 비관론자들과 비교되는 모습이다. 그래서 언제 시장에서 탈출하는 게 좋은지 물었다.

“아직은 증시의 빠른 리듬에 맞춰 춤을 춰도 좋다고 본다. 내 홈페이지 배경 그림을 아는가. 17세기 유럽 화가 카스파르 메그링거가 내 모국 스위스 성당들에 그린 ‘죽음의 춤’이다. 투자자들에게 주가 상승에 편승해 돈을 벌되, 너무 취하지는 말고 항상 경각심을 가지라는 의미로 그 그림을 썼다.”

그가 왜 ‘닥터 둠(음울한 예언가)’으로 불리는지 이해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지난주 국내 증시가 정부의 과열 경고에 순응해 조정을 보인 것은 나쁘지 않은 흐름으로 풀이할 수 있다.

파머는 ‘죽음의 춤’을 추지 않기 위한 대비책을 귀띔했다. 신흥시장 주식 가운데 너무 많이 상승한 쪽부터 보유 비중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권했다.

“중국과 베트남 주식은 너무 비싸다. 더 오르더라도 포지션(보유량)을 키우면 안 된다.”

그렇다면 파버 자신이 보유한 베트남 주식과 부동산은 어떻게 했을까. “나는 현재 시장 전망을 주제로 인터뷰하고 있다”며 “내 자산운용 전략은 오늘의 주제가 아니다”고 냉정하게 선을 그었다.
이어 그는 앞으로 유망한 투자대상 세 가지를 추천했다. 먼저 미 재무부 채권이다.

“미 국채값이 싸지고 있다. 주가 급락에 대비해 적절한 시기에 2년만기 미 재무부 채권을 사들여 만기에 상환받으면 좋다. 훌륭한 대안 투자가 될 수 있다.”
두 번째로 그는 태국 주식을 추천했다. “쿠데타로 아주 저평가돼 있다”며 “이 나라 기업 실적이나 거시경제 상황에 비춰 상당히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현재 태국에 살고 있다. 주기적으로 홍콩ㆍ뉴욕ㆍ런던 금융시장을 주유하며 시장 감각을 날카롭게 벼리고 있지만 1년 가운데 상당 기간을 태국에 머문다. 그래서 누구보다 태국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파버가 세 번째로 꼽은 투자대상은 설탕과 면화ㆍ금이다. “설탕과 면화는 상품 가운데 가격이 비교적 크게 오르지 않았다.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이점도 있다. 금은 더 오를 가능성이 있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좋은 비상수단이기 때문에 투자할 만하다.”
그가 과감한 예언을 내놓을 수 있는 배짱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나는 스위스에서 태어나 취리히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영국으로 건너가 레스토랑에서 감자 깎으며 영어를 배웠다. 1980년대 정크본드 열풍을 일으킨 미 드렉셀 번햄 램버트의 홍콩 대표를 지내고 있는데 회사가 망해버렸다. 내 인생이 롤러코스트였다.(웃음) 이런 인생을 살면 강해지고 감각이 예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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