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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행복한 선진국 (中) 핀란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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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 05면

사회·경제적 평등 못지않게 양성평등도 행복의 중요한 열쇠다. 핀란드는 현직 대통령(타리야 카리나 할로넨·작은사진)이 여성이고 국회의원 200명 중 84명이 여성이다. [중앙포토]

하늘에서 내려다본 핀란드는 숲과 호수의 끝없는 파노라마입니다. 국토의 70%가 삼림이고, 10%가 호수입니다. 크고 작은 호수가 18만8000개나 된다고 합니다. 무공해 청정 지대에 살고 있기 때문일까요? 핀란드인의 93%가 “나는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유럽연합 2006년 12월 여론조사)

순회특파원 현장 리포트 #정직이 부패 없는 '청정국가' 만들었다 #IT 등 성장동력 육성, 高성장·高복지 신화 … 장관 60%는 여성

환경이 인간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행복한 건 아닐 겁니다.

사실 자연조건만 놓고 보면 핀란드는 오히려 불행한 편입니다. 1년 중 거의 절반이 겨울이고, 혹한(酷寒)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합니다. 헬싱키 앞 발틱해의 얼음은 5월이나 돼야 녹기 시작합니다. 길고 긴 환한 밤과 어두운 낮도 견뎌야 합니다. 지정학적 조건도 불리합니다. 700여 년 동안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고, 100여 년간 러시아의 공국(公國) 신세였습니다. 40~50년 전만 해도 핀란드는 ‘유럽의 변방’이고, ‘북유럽의 병자(病者)’였습니다.

그렇던 핀란드가 지금은 ‘작지만 강한 나라’의 모범으로 많은 나라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국제경쟁력 종합평가에서 핀란드는 2004년 1위에 이어 2005년과 2006년 연속 2위를 기록했습니다. 2005년 부문별 경쟁력을 보면 △국가제도 1위 △고등교육 1위 △환경 3위 △혁신 4위 △정보통신 5위 △양성평등 5위였습니다.

전 세계 어린이들이 산타에게 보내는 편지는 핀란드 로바니에미 지방에 있는 ‘산타마을’로 보내진다. [중앙포토]

다른 북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핀란드도 국민의 세금으로 높은 수준의 사회복지제도를 운영하는 노르딕 모델을 따르고 있습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조세액을 뜻하는 조세부담률은 44.3%로, 스웨덴(50.5%)과 덴마크(48.8%) 다음으로 높습니다. 개인소득세 최고 세율은 51%나 됩니다.

그런데도 지난해 핀란드 경제는 유럽에선 이례적으로 높은 5.5%의 실질성장을 이룩했습니다. 높은 세율과 높은 수준의 사회보장은 기업의 투자의욕과 국민의 근로의욕을 떨어뜨려 국제경쟁력 약화와 성장의 둔화로 이어진다는 논리를 반박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핀란드라고 WEF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핀란드 경제의 견인차는 노키아입니다.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35%를 차지하는 간판 기업입니다. 2005년 노키아는 342억 유로의 매출을 기록, 핀란드 GDP의 22%를 기여했습니다. 핀란드는 정보기술(IT) 분야를 중심으로 디자인, 첨단부품 및 소재, 가정용품, 친환경 산업 등 자신 있는 일부 분야를 선택해 집중함으로써 성장동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핀란드의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 3만7900달러로 우리보다는 훨씬 높습니다. 하지만 세율이 높은 데다 물가가 비싸 솔직히 경제적 여유는 별로 없는 편입니다. 핀란드 최대 일간지인 ‘헬싱긴 사노마트’에서 메트로 담당 기자로 있는 리타 스넬만은 “집에서 싸온 샌드위치를 먹거나, 구내 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을 때우는 경우가 많다”며 “사실 제대로 된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할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다”고 말합니다. 스넬만의 연봉은 6만6000유로(약 8200만원)로, 35%의 세금을 떼고 나면 생활이 빠듯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핀란드에서 맞벌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핀란드인들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기본적 요인은 누구나 최소한의 인간적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국가가 보장하는 사회복지제도 덕분이라는 것이 만나본 핀란드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었습니다. 성(性)과 출신, 능력의 차이를 떠나 모두가 독립된 인격체로서 각자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개척할 수 있는 기본 여건이 갖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세금을 내면서도 ‘나는 행복한 납세자’라는 인식이 보편화돼 있습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요인은 정직을 절대적 가치로 여기는 핀란드인의 의식구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탐페레 대학 심리학 교수인 마르쿠 오야넨 박사의 설명입니다. “핀란드인은 과묵하기로 유명합니다. 그런 만큼 말을 하면 그 말은 반드시 솔직하고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불문율입니다. 서로 정직하다는 전제 하에 모든 인간관계가 출발합니다.” 정직이 신뢰를 낳고, 신뢰가 쌓여 형성된 투명하고 부패 없는 사회가 핀란드인들의 행복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매년 평가하는 부패인식지수(CPI) 조사에서 가장 깨끗한 나라 1위는 늘 핀란드입니다.

핀란드 사회보건부의 테르투 사볼라이넨 차관은 사회ㆍ경제적 평등과 양성평등도 행복의 중요한 열쇠라고 말합니다. 핀란드에서는 소득 수준 상위 10%와 하위 10% 사이의 격차가 약 5배에 지나지 않습니다. 핀란드는 여성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동시에 부여한 세계 최초의 나라입니다. 1906년이었습니다. 직선으로 선출된 핀란드의 현직 대통령은 여성이고, 20명의 각료 중 12명이 여성입니다. 국회의원 200명 중 84명이 여성입니다.

“돈이 많다고 사치를 하거나 지위가 높다고 위세를 부리는 것은 금기(禁忌)로 돼 있어요. 누구나 티 안 내고 검소하게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요. 또 양성평등이 인간의 행복에 기여한다는 사회적 컨센서스가 형성돼 있습니다.” 사볼라이넨 차관의 말입니다. 너무나 먼 나라 얘기인가요. 다음 주는 ‘켈틱의 호랑이’ 아일랜드 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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