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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중대선언」 위협인가 승부수인가/폭로·거물영입 두갈래 관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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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자 돈줄·과거의 헌금명세 공개 가능성/박태준­이종찬씨 유인·사재헌납도 점쳐/민자 다단계대책 마련/민주 “궁지탈출 심리전” 판단
정주영 국민당대통령후보가 곧 중대선언을 할 것이라고 한다. 정 후보는 지난 7일 여직원의 양심선언으로 현대의 자금이 국민당으로 유입된 것이 확인되자 아침 일찍 변정일대변인을 불러 『12일 여의도집회에서 중대선언을 할 것이라고 알리라』고 지시했다.
정 후보는 최근 정부의 현대수사로 몰린 궁지를 탈출할 역전의 시점을 12일 여의도 「1백만 군중집회」로 잡고 있다. 이 때문에 중대선언설의 내용을 놓고 추측이 분분하다.
○…정 후보가 지금까지 해온 말들을 근거로 추리해 볼때 중대선언은 폭로설과 새로운 정치거물영입설로 압축된다.
정 후보는 현대파문이후 유세때마다 『왜 우리만 조사하나. 돈은 민자당이 더 쓴다』고 항변해 왔다. 따라서 폭로설의 첫번째는 민자당의 자금에 대해 정부가 수사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정 후보는 방대한 정보망을 통해 이미 재계의 돈흐름을 상당히 포착해 왔다는 것이 주위의 주장이다. 정 후보가 상업은행 명동지점장 자살사건 당시 롯데그룹 신격호회장을 만난 것은 나름대로 「취재」와 「압력」을 위한 것이란 얘기가 있다. 당직자들은 특정그룹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어느 정도의 증거까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같은 폭로는 공멸의 가능성이 있기에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두번째 폭로설은 정 후보가 지금까지 관리해온 정치자금명부를 공개하는 것이다. 측근들은 『힘 깨나 쓰는 사람치고 지금까지 현대돈 안받는 사람 누가 있나』라며 큰소리친다. 전경련회장 10년 등 수십년간 재계의 중심역할을 하면서 정 후보가 써온 정치자금과 이른바 정주영장학금은 상당할 수 밖에 없으리라 추측된다. 정 후보는 이제 이를 역이용,상대를 제압하는 무기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정·재계를 흔들 수 있는 폭탄인 셈이다.
세번째 폭로가능성은 정 후보가 지금까지 주장해온 정부의 편파성과 비중립성을 입증할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국민당은 이미 지난 2일 안기부의 김영삼후보지원을 주장하는 「보좌관실제 신설」을 폭로한바 있다. 안기부는 이를 부인했지만 이 폭로는 안기부를 잘아는 입당파 모의원과 안기부 내부 제보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당은 두차례의 발표에 이은 후속 발표거리를 준비하고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치거물영입설의 첫번째 주인공은 박태준의원이다. 정 후보는 지난 여름이후 끊임없이 박 의원의 입당약속을 주장해 왔으며,최근에는 외압으로 입당이 지연되고 있다고 설명해 왔다. 그러나 박 의원 측근들은 누차 정 후보의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두고보라는 것이다.
두번째 주인공은 이종찬의원. 지난 통합과정에서 이 의원이 빠진 이후에도 국민당은 김동길최고위원 등을 통해 이 의원과 접촉을 계속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역시 이 의원측은 『정경유착을 비판해온 입장에서 있을 수 없다』고 부인한다.
정 후보는 이미 외부조언자의 자문을 받아 부동의 결심이 선듯하다. 이제 누구도 그의 결심을 바꿀 수는 없는 상황인듯 하다. 어쩌면 국면탈출을 위한 위협용일 수도 있다. 그러나 거짓이든,사실이든 대선막바지의 승부수임은 분명할 것이다.
○…민자당도 국민당의 폭탄선언이 표밭을 한차례 요동치게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선언의 내용과 파장을 어림하고 있다.
민자당은 국민당이 내놓을 수 있는 카드를 대략 세갈래로 짐작하고 있다. 우선 김영삼후보에게 직격탄을 가할 목적의 정치자금제공 폭로다. 민자당은 현재 현대중공업 비자금 확인 등으로 정 후보의 상승세가 주춤한 반면 김 후보는 회복세로 전환하는 상황이고 무엇보다 민자당에 대한 국민당의 감정이 격앙되어 있기 때문에 이같은 자폭성 선언을 배제할 수 없다는 판단을 갖고 있다.
민자당은 그러나 정 후보가 그동안 수차례 두김씨에게 정치자금을 준바 없다고 공언한 것을 역공의 자료로 사용한다는 대비책을 세우고 있다.
둘째는 국민당이 공직자로 하여금 관권개입을 폭로하도록 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민자당은 그러나 이같은 폭로가 한준수 전연기군수의 양심선언 만큼 파괴력을 가질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고 있으며 대응은 그때가서 하겠다는 심산이다.
세번째로 정 후보 사퇴 및 김대중 민주당후보에 대한 지지선언 가능성도 염두에 넣고 있다. 즉 정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해질때 정 후보가 현대그룹 보호를 위해 DJ와 제휴할지도 모른다는 예측이다. 그러나 민자당은 그럴 가능성이 우선 적은데다 설사 민주·국민당이 연합할 경우,양김대결구도를 더욱 강화할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유리하다고 홍보하고 있다.
○…민주당은 정주영국민당후보의 중대선언 예고가 기본적으로 현대수사로 코너에 몰린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한 고도의 심리전으로 판단하고 있다. 「반김영삼후보 연합전선」 제의나 사재 3조원을 농촌부채 탕감에 쓴다든지,노태우대통령을 겨냥하는 폭탄선언 가능성을 따져본 선거본부의 한 관계자는 『금권시비를 편파수사논쟁으로 묵살하는 「물귀신전략」이 나올 것』으로 진단했다.
이중 반YS연합전선 제의는 유권자층의 미묘한 성향을 보아 오히려 YS지지세를 굳혀 줄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선택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민주당도 원치않고 있다.
비자금을 둘러싼 「함께 욕먹기」도 채택할 것으로 보지 않고 있으며 정 후보가 내세우는 「경제대통령」이미지를 굳히기 위해 사재를 터는 쪽이 될 것으로 일단 전망.<오병상·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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