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구속 64명… 남로당이후 최대/간첩단 사건(추적 ’92:4)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정치인연루설… 대선정국 “시한폭탄”/“대공 경계망에 구멍뚫렸다” 충격도
구속자 64명,수배자 3백여명에 이르는 남노당이후 최대규모의 「남한조선노동당」 간첩단사건은 남북화해무드에 들뜬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고 대공경계망에 엄청난 구멍이 뚫려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북한 권력서열 22위」라는 공작총책 이선실(76·여)이 10여년간이나 남한에서 버젓이 활보하며 재야인사에서부터 현역정치인을 망라한 각계각층의 인사를 포섭대상으로 삼아 대남 공작을 직접 지휘했다는 사실은 국민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대선을 앞둔 미묘한 시점에서 민주당 김대중후보의 비서 이근희씨(26)가 군사기밀누설 혐의로 구속되고 현역 정치인 연루설이 퍼지면서 간첩단사건은 대선정국의 「태풍의 눈」으로 발전,아직까지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남아있는 상태다.
안기부는 이선실의 계좌추적을 통해 관련자 색출을 계속,1일 전대협·민가협·전교조 등에도 관련자가 있다고 밝힘으로써 북의 손길이 재야에까지 침투했을 가능성을 시사했으며 야당측은 민자당·정부고위 관계자도 접촉이 있었다고 주장해 또다른 의혹을 낳고 있다.
어쨌든 이번 사건으로 재야운동권은 큰 타격을 받았으며 그중에서도 장기표(47)·김낙중(57)·손병선(52)씨가 주도했던 「민주개혁과 사회진보를 위한 협의회(민사협)」가 가장 피해가 커 사실상 기능이 중지된 상태다.
이번 사건은 관련자 대부분이 혐의사실을 시인,대규모 간첩단사건 때마다 일었던 「조작설」이 거의 없다는 것이 특징.
이때문에 시국사건을 전담하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내에서도 이번 사건을 맡을지 여부에 대한 격론끝에 민변단위가 아닌 개인차원에서 변호하기로 최종결정을 내렸다는 후문이다.
일반 사상범들이 검거뒤에도 신념을 굽히지 않는 것과는 달리 핵심인물인 황인오(36)·인욱(25)씨 형제를 비롯,64명중 절반가량이 과거행적을 뉘우치는 반성문·진술서를 제출해 많은 수가 확고한 이념이 아닌 「주사파」 조류에 휩쓸려 조직에 가담한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여자들은 대부분 전향을 거부,수사관들 사이에서 『여자들이 더 독하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으며 최호경(35)·손병선씨 등도 검찰에서 주체사상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고 있고 장기표씨는 불고지혐의를 전면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북한공작원 및 황인오씨의 허술한 조직관리 때문에 일망타진됐다며 이들을 원망,수사과정에서 황씨와 심하게 다퉜다고 검찰관계자는 전했다.
김낙중씨는 이번 재판이 확정되는대로 감옥에서 자신의 사상편력을 담은 저서 『굽이치는 임진강』의 속편을 집필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관련자에 대한 사법처리는 3일 손씨의 딸 민영씨(31)가 기소된 것을 끝으로 뒤늦게 검거된 김부겸씨(34·민주당 부대변인)를 제외한 구속자 63명이 모두 기소돼 사건을 맡은 법원도 공소장만 평균 2백여쪽에 달하는 엄청난 기록을 검토하느라 비상이 걸렸다.
지난달 12일 김낙중씨의 공판을 시작으로 대대적인 재판이 시작되면서 연루 정치인이 밝혀질 가능성도 있어 각계에서는 재판과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남정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