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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경제환경 불확실성의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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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살림살이가 좀 나아질 것이라고들 믿었다. 북핵 위기와 이라크 전쟁은 걱정한 만큼 경제에 여파를 미치지 않았고 해외 경기가 살아나면서 외적인 경제 여건은 오히려 좋아졌다. 우리만 열심히 하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릴 것 같던 한 해였다. 그런데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3%가 될까 말까한 성장률은 올해 초 예측치의 절반 수준이다. 우리의 잠재성장률은 물론 세계의 평균성장률보다 낮은 성적이다.

무엇이 원인일까. 우선 현상적으로 보면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의 부진이 두드러졌다. 아무리 수출이 잘 돼도 내수가 형편없으니 생산이 빠르게 늘 수 없었다. 고용 불안과 투자 침체가 뒤따르고 이는 전반적인 소비 심리 위축으로 이어졌다. 외환위기 때와는 비교하기 힘든 상황인데도 오히려 그 때보다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 역시 수출로 밀어붙이고 투자로 받쳐주는 과거의 성장 패턴이 깨진 것에 의아해 하고 있다.

무엇이 경제를 얼어붙게 만들었을까. 가계부채 탓을 하지만 단순히 빚이 많아 소비를 안한다고 보긴 어렵다. 현저하게 부채비율이 낮아진 기업들 역시 투자를 외면하고 있다. 모두들 불안한 것이다. 일자리와 소득에 대한 기대감이 높지 않고 장기 투자에 대한 수익성이 확실치 않으니 움츠리는 것이다. 수출 수요가 있는 산업조차 설비 투자보다는 공장 가동률을 높이는 식의 대응을 하고 있다.

내년도 성장률이 5%가 넘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지만 별로 감동적이지 않다. 우선 예측 기관들이 신뢰를 얻으려면 왜 자신들의 예상이 자주 바뀌고 잘 틀리는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시장의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이번 예측 역시 가변성이 높을 것이다. 또한 내년도 성장률은 침제기였던 올해 대비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잠재성장률인 5% 수준을 훌쩍 넘어서야 만족스러운 것이다. 가뜩이나 불균형 구조를 가진 경제인데 성장의 과실이 몇몇 수출산업과 대기업에 집중되는 것도 걱정스럽다.

한마디로 우리 경제는 경기순환 차원을 넘어서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고 봐야 한다. 무엇보다 경제 환경의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따라서 의사결정에 따른 위험 부담이 높다. 정보나 자본의 절대 우위에 있는 소수에게만 유리한 이런 환경이 지속되면 성장과 분배가 함께 헝클어진다. 불확실성을 초래하는 근본 원인에 대한 고려 없이 과거의 방식이나 외국의 경험에 의존한 정책처방을 내리면 시장의 혼란은 더 심해질 것이다.

세 가지만 따져보자. 첫째, 외환위기를 정점으로 정부 규제.재벌 체제.차입재원 중심의 성장방식은 한계에 이르렀다. 금융개혁. 기업개혁.규제개혁이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 후반부로 오면 무엇에 홀렸는지 구조조정은 미뤄두고 가계대출과 신용카드 남발 등 단기 처방에 급급했다. 반짝경기 끝에 남은 것은 가계부채.금융 불안.부동산 투기다.

둘째, 시장개방이 급속히 진전되며 거시안정을 위한 전통적 수단들의 실효성은 떨어지고 국제 자본시장에 예속된 금융이 실물을 좌지우지하는 정도가 커지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금융을 실물경제의 부속물 정도로 생각하는 관료가 적지 않다.

셋째, 민주화의 진전으로 정책의 결정과 집행이 정치과정의 산물로 결정되는 부분이 커졌다. 분배와 노사관계를 둘러싼 갈등의 심화는 다분히 예견된 일이며 경기가 회복된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밀실에서 정책을 만들어 들이대는 권위주의적 작태부터 버려야 한다.

결국 많은 것을 바꾸지 않고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힘들다. 그래서 개혁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개혁이 왜 필요한지도 모르는 아마추어들이 국정과제를 정하고 과거의 수단에 익숙한 사람들이 정책을 펴내니 정부가 오히려 시장 불안을 야기한다는 비판을 듣는 것이다. 참여정부 1년을 보내며 기득권 층은 숨어서 키득거리고, 나라 장래를 생각하며 개혁을 외쳐온 이들은 실망하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메아리 없는 세상을 바라보며 허탈한 세모를 보내는 사람이 어찌 나뿐이겠는가.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