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얀의 이야기(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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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주한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에서 발행하는 「유니세프소식」 10월호에는 「이 이야기는 소말리아에서 일어난 실제상황」이라는 단서와 함께 「아얀의 이야기」라는 조그만 기사가 실려 눈길을 끈다.
『아얀은 검은 눈을 가진 일곱살의 작은 소녀다. 어느날 밤 그녀는 요란한 총소리에 잠이 깼다. 어둠속에서 아버지가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향해 아얀은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갑자기 총소리가 그쳤다. 무서운 침묵이 흘렀다. 다음 순간 아얀은 여동생 아딜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아딜이 쓰러진 어머니의 가슴을 파고들며 울고 있었다. 어머니의 뺨에서는 붉은 피가 계속 흘러내렸다. 아버지는 문옆에 쓰러져 죽어있었다. 총을 든 남자가 어둠속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그리고 며칠뒤 구조대원들이 그들을 발견했을 때 두 소녀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앙상하게 뼈만 남아있었다.
유니세프는 최근 75만명에서 1백만명에 달하는 10세이하의 소말리아 어린이 가운데 95% 이상이 영양실조에 걸려 있고,그들중 절반가량이 아사직전의 심각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경고했다. 유엔도 국제원조기관의 구호식량이 난민에게 전달되지 않을 경우 소말리아의 인구 64%에 달하는 4백50만명이 머지않아 굶어죽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함족계의 소말리아인으로 구성된 이 나라는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이지만 소와 낙타에 먹일 물만 있으면 그런대로 평화롭게 살 수 있었던 유목국가였다. 그런데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이르는 기간 유럽열강의 분할통치로 국토는 산산조각이 나고 국민은 분열되었다. 1960년 독립된 이후에도 군웅이 할거했고,특히 69년 시아드 바레가 집권한 이후는 자신의 출신부족만 우대하고 다른 부족을 탄압하는 등 독재권력을 행사함으로써 부족간·지역간의 갈등을 낳게 했다. 그 갈등이 오늘 돌이킬 수 없는 내전으로 확대된 것이다.
기아와 무정부상태의 소말리아에 한국도 평화유지군으로 참여요청이 와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군대는 아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유니세프문화예술인 클럽(회장 박용구)이 지난달 연 「소말리아 어린이를 위한 사랑의 장터」에 모인 사람들은 또 하나의 평화유지군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손기상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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