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Blog] 멀티플렉스 지나 '씨네 드 쉐프' 영화관의 명품화, 어디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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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0만원짜리 영화관이 한 달 반 전에 문을 열었다. CGV 서울 압구정점에 있는 '씨네 드 쉐프'란 곳이다. 프랑스어로 '요리사가 있는 영화관'이란 뜻이다. 무엇보다 10만원이란 가격에 놀랐다. 사실 10만원은 주말 저녁 기준이고, 평일 낮은 6만원, 평일 저녁과 주말 낮은 8만원이다. 어쨌건 일반 극장에 비해 엄청나게 비싼 가격이다. 도대체 그 돈을 내고 영화를 보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직접 찾아가 보기로 했다.

도착했을 때는 점심시간이었다. 먼저 온 관객들이 양식 코스 요리를 즐기고 있었다. 해외 명문 요리학교 출신 요리사가 준비한 호텔식 정찬이라는 설명이다.

샐러드를 비롯해 전채 요리만도 꽤 여러 종류가 나왔다. 메인 요리도 훌륭했다. 대체로 비싼 값어치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극장에서 음식이 첫째일 순 없다. 무엇보다 영화를 보는 데 좋은 환경이어야 한다.

시설도 듣던 대로 훌륭해 보였다. 의자는 넓고 편안했다. 다리를 쭉 뻗고 거의 누운 자세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의자 하나에 800만원을 호가하는 고급품이라고 했다. 스크린에는 0.5㎜의 미세한 구멍(일반극장은 평균 1.2㎜)이 촘촘하게 뚫려 있었다. 영사기에서 쏜 빛의 반사를 최소한으로 억제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래선지 화면은 일반극장보다 더 선명해 보였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닥 스피커였다. 천장과 좌.우 벽에 더해 바닥에서도 소리가 울려퍼졌다. 영화를 보는 동안 의자가 떨리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CGV 관계자는 "바닥 스피커는 국내엔 물론 해외에서도 유례가 없다"고 자랑했다.

훌륭한 시설에 비해 운영의 노하우는 아직 부족한 듯했다. 결정적으로 기자를 실망시킨 것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였다. 자막이 미처 다 올라가지 않았는데 직원이 들어와 장내를 정리했다. 끝까지 자리를 지키기엔 어색한 분위기였다. 영화는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였는데 엔딩 크레디트가 끝나고 나오는 마지막 장면을 대부분 관객이 놓쳤다. 이 정도의 운영상 미숙함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믿는다.

돌아나오면서 예전에 구식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기억이 떠올랐다. 불과 10년 전의 일이다. 그러던 것이 멀티플렉스가 들어오면서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멀티플렉스와 구식 극장은 백화점.할인점 같은 대형 유통업체와 재래 시장의 관계와 비슷할 것이다. '씨네 드 쉐프'는 그중에서도 백화점의 명품관, 항공기의 1등석에 해당한다.

이제 관객은 같은 영화라도 각자 주머니 사정에 따라 극장을 골라갈 수 있게 됐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극장도 변화하는 것이다. 관객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 셈이다.

일부 멀티플렉스는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도 없는 서비스를 도입하기도 한다. 극장의 분화가 어디까지 계속될지…. 무슨 영화를 봤느냐가 아니라 어디서 보았느냐가 관객의 품위(?)를 가르는 시대가 온 것 같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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