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의 「1초 여유」(특파원 코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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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엘리베이터 버튼에 손대는 일 없어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때마다 한국식 습관이 불쑥 불쑥 튀어나와 민망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서울에서는 빌딩이나 아파트를 오르내릴 때 누구나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단 엘리베이터를 타면 「닫힘」 버튼을 누르는 것이 보통이다.
그냥 내버려두어도 잠시 뒤면 저절로 문이 닫히게 마련인데 우리는 그 짧은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일단 탔다하면 습관적으로 「닫힘」 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면 문이 저절로 닫힐 때까지 기다리며 누구도 버튼을 만지지 않는다.
엘리베이터를 내릴때 역시 미국 사람들은 몇초동안 움직이지 않는다.
어린이나 여자가 먼저 내리도록 기다리는 것이다.
친절한 남자들은 여자들이 내리는 동안 문이 닫히는 것을 막기 위해 엘리베이터 문에 손을 대고 기다린다. 마치 한국에서 아랫사람이 윗사람 모시듯 깍듯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건물을 드나들면서 문을 열고 나가는 경우에도 우리는 뒷사람을 생각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자기뒤에 사람이 바로 뒤따라 오면 반드시 그 사람이 문을 나설때까지 문을 붙잡아 준다.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이 마주쳤을때 한쪽이 여자일 경우 여자가 먼저 출입할 수 있도록 문을 붙잡아 준다.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 생활을 하고 있는데 과연 자녀들에게 엘리베이터 타고 내리는 예절을 가르쳐주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같은 아파트에서 그것도 같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며 사는데도 인사하는 것은 고사하고 어른이 내리기 전에 젊은 학생이 먼저 튀어나가는 것을 우리는 흔히 본다. 우리가 예절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해 왔던 미국인들이 우리보다 훨씬 예절바른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는 어디 있을까. 이러한 일들은 1초만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해결될 수 있는데도 우리의 각박한 세태가 그만한 여유조차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며 자녀들에게까지 그대로 전수된 탓이다.<문창극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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