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인가 「철새」인가/국민당 박차고나온 차화준(의원탐구:1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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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현대아성 울산출신… 당내선 “배은망덕” 거센 비난/당운영 소외 반발 탈당길 선택
지난 19일 세간의 관심이 온통 김복동의원의 묘연해진 행방과 거취에 집중돼 있을 때 국민당에서는 김 의원의 입당못지않은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다름 아닌 울산출신 차화준의원의 탈당이었다.
「국민당=현대=울산」이라는 불변의 등식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울산출신 의원의 국민당 탈당은 당내에 적지않은 파문을 던졌다. 일단 국민당은 놀라고 분개했다. 차 의원이 평소 당 운영 등에 대해 불만을 가졌던 것은 알려져 있었지만 설마 탈당하리라고까지 생각은 못했기에 의외라는 반응이 먼저였다. 이어 『누가 금배지 달아줬는데…』라는 원망,『배은망덕한…』이라는 비난,그리고 『다시 울산에 나타날 수 있나 봐라』는 협박성 발언까지 서슴없이 나왔다.
차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가장 근소한 11표차로 승리했었으며,실제로 현대자동차 직원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몰표가 나와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기에 현대덕을 톡톡히 본 사람임에 틀림없다. 탈당한 차 의원 자신도 이 부분을 인정한다. 그러나 차 의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당을 결정한 심정을 이해해달라』고 말한다. 일단 그가 공식적으로 내놓은 「탈당의 변」은 『정부에 오래 봉직했던 관료의 경험을 정치에 접목해 보려 했으나 국민당에서는 이의 실현이 어렵다고 판단되어 탈당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탈당 이유는 지나온 행적을 통해 보다 객관적으로 가늠될 수 있다. 차 의원은 정치인이라기보다 관료에 가깝다. 그는 울산의 부농 집안에서 태어나 별 어려움 없이 자라 58년 당시로선 엘리트 코스인 경제기획원 전신인 부흥부 관료로 공직에 들어가 25년간 경제기획원에서 근무했다. 차관보까지 지내다 80년 7월 5·17을 주도한 신군부의 공직자 정화 칼날에 「숙정」이라는 불명예 퇴직을 당했다. 3공 근대화의 견인차라고 자부해온 고위관료였떤 그는 졸지에 『이후락과 친하다』는 등의 모호한 이유로 실업자가 돼버렸다. 1년여 고생 끝에 그는 관료시절 알던 럭키금성그룹 계열사인 범한화재해상보험사장이 되었으며 이어 고려증권사장 등을 지낼 수 있었다. 그러던중 정치에 뜻을 두게된 것은 「불명예를 씻어보자」는 동기에서 출발했다. 주위의 권유도 있었다. 경제기획원 동료이자 김영삼 당시통일민주당총재의 측근이었던 황병태 전의원 등의 권유로 통일민주당 경제자문역을 맡으며 조금씩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 결정적으로 그의 금배지 욕심을 자극시킨 것은 고향인 울산 중구의 13대선거 결과였다. 당시 민정당 사무부총장으로 막강해보였던 김태호의원이 무명상대와 힘겹게 싸워 이긴 것을 본 그는 『14대에 도전하면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때 이후 그는 오로지 지역구 확보에만 매달렸다. 통일민주당이 갑자기 3당통합으로 사라지자 야당 잔류파인 이기택의원의 구민주당에 합류해 처음으로 지구당위원장직을 얻었다. 그런데 다시 야권통합 바람에 구민주당마저 없어져 버렸다. 김대중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으로는 지역 여건상 도저히 당선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지난 1월 민주당을 탈당했으며 마침 총선을 앞두고 탄생한 국민당에 입당한 것이다. 정주영대표의 아들이자 울산지역구 출신인 정몽준의원의 권유로 입당한 것은 의원 후보가 필요한 국민당의 이해와 당 및 지지 기반이 필요한 그의 이해가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대선 공고 하루전 다시 국민당을 탈당했다.
짧은 기간에 많은 당을 옮겨다닌 그는 「철새」라는 오명을 들을만하다. 그러나 탈당의 변처럼 국민당은 그가 찾던 일자리가 아니었던 것 같다. 일단 소수야당이라는 근본적 한계를 안고 있는데다 자신의 정견을 펼칠 공간도 부족했다. 기본적으로 국민당은 정주영대표 중심·현대출신 중심으로 움직이기에 정당활동이나 정책결정에서 소외될 수 밖에 없었다.
의원총회에서 그는 『우리가 급사냐』라고 거칠게 항의하기도 했다. 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의사결정과정에는 전혀 참여가 보장되지 않고 오히려 현대출신 보좌역이 지구당에 파견돼 지구당 활동을 감시하는데 대한 불만이었다. 불같은 그의 성미도 탈당을 충동질했음에 분명하다. 그는 경제기획원 관료 시절 부하 직원이 결재 서류를 조금 틀리게 올리거나 하면 그자리에서 서류를 내동댕이 치며 『똑똑이 알고 해』라고 고함쳐 주위 사람들까지 깜짝 놀라게 하는 등 일화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좋게보자면 「일에 그만큼 열정적」이라고 할 수 있고,나쁘게 말하면 「참을성이 부족한 것」이다. 국민당에서 그와 가장 감정 충돌이 많았던 사람은 그를 영입했던 정몽준의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 의원이 과연 권력을 좇는 「철새 정치인」인지,아니면 또한번 좌절한 「소신파 관료」인지는 앞으로의 정치활동을 통해 점차 판명될 것이다.<오병상기자>
□차 의원 약력
▲경북 울산출신(57세) ▲연세대 정외과졸업 ▲뉴욕주립대 경제과 수료 ▲경제기획원차관보 ▲범한화재해상보험사장 ▲고려증권사장 ▲고려종합경제연구소사장 ▲14대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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