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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스페니쉬 아파트먼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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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든 싫든 젊음은 특권이다. 충동적인 사랑에 몸을 내맡기는 일도, 낯선 땅으로 훌쩍 떠나는 일도 젊은이에게는 한결 너그럽다. 내년 1월 1일 개봉하는 '스페니쉬 아파트먼트'는 이런 젊음을 흠뻑 맛볼 수 있는 영화다. 유럽의 다른 문화권 출신 유학생들이 서로에 대한 포용력을 몸으로 익히며 성장하는 과정은 우리네 젊은이들에게도 한번쯤 권하고 싶은 매력적인 체험으로 그려진다.

주인공은 대학을 갓 졸업한 프랑스 청년 자비에(로망 뒤리스). 어린시절 작가를 꿈꾸던 그이지만 통합된 유럽 역시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이라 어른들은 스페인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라고 권한다. 서툰 스페인어와 짐가방으로 무장한 채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자비에는 잠자리를 구하는 일부터 난관에 부닥친다.

공항에서 만난 프랑스인 의사 부부의 집에 잠시 머물다 찾아낸 곳이 제목에 나오는, 자신 같은 처지의 학생들이 공동으로 빌린 아파트다. 영국.독일.이탈리아.벨기에.덴마크.프랑스.스페인 등 다국적 학생들은 생활방식과 성격이 제각각이고, 자연히 좌충우돌하는 일상이 이어진다.

유럽에서도 변방에 속하는 스페인은 가우디의 건축물 같은 눈요깃감뿐 아니라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라는 메시지를 보여주는 데도 좋은 역할을 한다. 파리보다 더러운 도시라는 프랑스인의 불평을 자비에가 나무라는 장면처럼 직설적인 화법도 등장하지만, 영화는 대체로 젊은이들 눈높이의 에피소드와 무리없는 웃음으로 공감대를 넓혀간다.

특히 한창 때의 젊은이들인 만큼 연애는 문화와 관계없이 가장 큰 공통분모를 형성한다. 프랑스에 두고 온 애인 마틴(오드리 토투)과 서먹한 사이가 돼버린 자비에는 여성 동성애자인 이사벨(세실 드 프랑스)의 도움말을 실천에 옮겨 유부녀와 육체적인 만남에 몰두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비에를 연기하는 배우 로맹 뒤리스의 순진하고도 수줍은 표정은 그런 자비에를 쉽게 탓하지 못하게 만든다. 동료들에게 따돌림당하던 웬디(켈리 라일리)조차 연애의 위기에 닥쳐서는 다른 친구들의 일치단결된 도움을 받는다. 여기서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은 이 영화에서 가장 웃기는 대목으로 꼽을 만하다.

'아멜리에'에서 깜찍한 매력을 발산했던 오드리 토투를 제외하면 배우들이 대부분 낯선 얼굴인 점이 오히려 영화를 실감나게 한다. 40대 초반의 프랑스 감독 세드리크 클라피슈는 10년 전 자신의 여동생이 극중에 나오는 '에라스무스'교환학생 프로그램(16세기 네덜란드의 인문주의 사상가이자 여행가의 이름을 땄다)으로 스페인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시나리오를 썼고, 유럽 각국의 배우들을 오디션해 출연진을 꾸렸다.

이 영화는 지난해 프랑스 세자르상에서 5개 부문 후보에 올라 신인여우상(세실 드 프랑스)을 받았고 대중적인 성공도 거뒀지만, 프랑스영화의 시장점유율이 1%를 밑도는(2003년 상반기 현재) 한국에서는 앞날을 점치기 힘들다. 수입사 측은 서울의 극장 한 곳에서 개봉한 뒤 "입소문의 힘을 빌려" 3주 후 전국으로 상영관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15세 이상 관람가.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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