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전국프리즘

분당급 신도시 대신 지방 중고 도시 살려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지방 사람들에게 분당은 신화이자 꿈이다. 가 보지는 못했어도 분당이 얼마나 좋은지는 들어서 안다. 그 분당이 다시 전국을 들썩거리게 하고 있다. 모두가 주저 없이 분당급 신도시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한다.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겠다는 참여정부의 의지도 '분당급' 열풍 앞에는 무기력할 뿐이다. 최근 정부의 분당급 신도시 발표를 보면서 한국의 균형발전은 정말 요원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신도시가 지어져야 수도권은 팽창을 멈출까.

분당급 신도시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수도권의 부족한 주택 공급을 해결할 방책이 신도시뿐인가. 참여정부가 차례로 발표해 온 판교와 송파의 신도시 정책은 지금 어떻게 되고 있는가.

국가 균형발전과 수도권 경쟁력 강화라는 양 측면에서 볼 때 신도시 전략은 구태의연하다. 지방에 사는 서민들에게 박탈감만을 줄 뿐이다. 신도시 정책은 결국 수도권의 공간적 범위를 확장시키고, 그렇게 넓혀진 수도권은 인구 분산을 가져오기보다는 서울의 교통 비용을 증가시키고 베드타운을 양산할 것이다. 그렇다고 분당급 신도시 덕택에 강남의 땅값과 집값이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국가균형발전의 깃발을 올렸으면 수미일관하여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 옳다. 지금 지방에는 30년 동안 인구가 반 토막난 중고 도시가 즐비하다. 대부분의 중고 도시들은 70년대에 집중적으로 건설되었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결같이 획기적인 도시 재생 프로그램을 필요로 하고 있다. 지방의 중고 도시 대부분이 인구 감소는 물론이고 구도심 공동화와 산업단지의 노후화로 고통받고 있다. 교육을 살리자니 인재가 없고, 인재를 붙잡으려니 좋은 직장과 학교가 없고, 좋은 사업장을 만들려니 연구개발(R&D)과 대학이 변변찮은 악순환이 무한히 계속되고 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 것이다.

KTX 시대가 열리고 주5일 근무가 일상화됐으면 거기에 걸맞은 도시 정책도 나와야 한다. 분당급 신도시 하나 건설에 투자되는 비용은 거의 10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 100분의 1만 전략적으로 투자해도 지방의 중고 도시들을 하나하나 재생시킬 수 있다. 지방의 중고 도시에 분당급 도시계획을 하고, 강남급 아파트를 짓고, 일산급 공원을 만들고, 파주급 첨단공장을 유치하고, 서울 유명 대학의 분교를 하나씩 내려보내면 그곳에 살고 싶어하는 수도권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다.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인구를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일은 절대로 쉽지 않다. 그러나 반강제로 공공기관을 내려보내고 혁신도시를 만들겠다는 참여정부의 당찬 기개는 어디로 갔는가. 혁신도시만이 균형발전정책의 성과는 아니다. 혁신도시는 균형발전의 시작일 뿐이다. 참여정부가 지탱해야 할 도시 전략은 분당급 신도시 개발이 아니라 지방의 중고 도시 재생 전략이다.

원도연 전북발전연구원 지역발전정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