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정착실패/구소·동구 다시 고개드는 공산세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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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리투아니아·루마니아 등서 재집권/“생활수준 오히려 후퇴” 국민들 불만
공산주의 세력이 재부상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89년 이후 거대한 민주화 물결앞에 차례차례 무너져갔던 소련·동유럽의 공산세력이 국민들의 지지를 발판으로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추세를 가장 극적으로 드러낸 경우는 리투아니아다. 리투아니아는 구소 공화국중 가장 반공 분위기가 강한 곳으로 민족주의 세력인 「사유디스」를 중심으로 91년 9월 탈소 독립을 성취한 바 있다.
그럼에도 지난 15일 총선에서 리투아니아공화국 공산당 제1서기 출신 알기르다스 브라자우스카스가 이끄는 민주노동당이 사유디스를 압도,1백41의석중 80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다. 물가앙등·실업·산업생산 감소 등 경제개혁의 부작용에다 사유디스의 내분까지 겹쳐 구공산세력이 투표에 의해 다시 집권하는 최초의 사례를 만들어냈다.
민주화혁명 당시 궤멸지경에 이르렀던 공산세력이 재기하는 모습은 다른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동유럽 최대국 폴란드에서는 민주좌파연합이 지난해 10월 총선에서 예상외로 강세를 보여 민주동맹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의석을 획득했다.
루마니아의 구공산세력 민주구국전선은 두달전 실시된 선거에서 사회보장제도 개선과 점진적 개혁을 내걸고 재집권에 성공했다.
불가리아에서는 최근 집권민주세력동맹의 디미트로프 내각이 의회 불신임으로 붕괴됨으로써 공산당의 후신으로 제1야당인 사회당이 정권을 맡을 가능성이 커졌다.
또 타지크 최고회의는 지난 19일 회교도­민주세력의 지지를 받아온 아크바르쇼 이스칸다로프 대통령권한대행의 사임을 승인하고 후임으로 친공계인 이마말리 라흐마노프를 선출했다. 내전을 방불케 하는 혼란속에서 이루어진 일이지만 공산세력의 지지기반이 폭넓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처럼 구공산세력이 지지를 넓혀가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예전의 공산국들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이행을 추진하면서 생겨난 부작용탓이다.
이러한 경제개혁 자체가 「공상적 자본주의」라고 할만큼 전례없는 일이어서 구공산국들은 숱한 시행착오를 감수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자유」와 「빵」을 위해 공산체제를 거부했던 국민들은 이를 감내하려 하지 않았다. 시장경제 도입이 서방과 같은 번영을 가져다 주기는커녕 대부분 국민들의 생활을 종전보다 못한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구소련·동유럽 국가들은 이행기의 정치·사회적 혼란과 자본·경영능력 등의 미비,외부 지원의 부족 등 어려운 여건이 겹쳐있는데다 이런 조건이 단시일내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구공산세력의 부상이 공산통치로의 복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구공산세력들은 하나같이 공산당이라는 이름을 포기하고 민주주의 원칙을 수용하는 한편 시장경제의 점진적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내세우던 과거의 공산당과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이들의 부상도 혁명적 봉기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것이다.
리투아니아 민주노동당 당수 브라자우스카스는 『일부 언론이 리투아니아에 공산주의자가 되돌아왔다고 떠들어대는 것은 사태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구공산주의 세력의 부상은 공산세력의 성공,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부활 때문이라기 보다는 민주 개혁세력의 실패,체제 이행의 어려움 탓으로 봐야 할 것이다.<곽한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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