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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대여성/19세 이전 결혼 80%/통계청,조선총독부 기록 입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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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평균수명 남 36.3 여 38.5세/75%가 농사… 3분의 2는 소작/근로자임금 일인의 45% 불과
일제의 식민통치체제가 굳어져 가던 30년대 우리나라 여성의 80% 이상이 미성년(19세 이전)에 조혼했으며 죽은 사람 10명중 환갑을 넘긴 사람이 2명정도 밖에 안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내용은 통계청이 18일 고서소장가로부터 최근 입수한 당시 총독부산하 조선통계협회의 협회지 「조선통계시보」11권을 토대로 30년대의 경제 사회적 시대상을 조명한 자료에서 밝혀진 것이다. 다음은 주요내용.
◇인구
35년 서울(경성부) 인구는 현재의 4%에 불과한 44만명이었으며 그중 30%는 국내거주 일본인들이었다. 지역별로는 경상북도가 2백56만여명으로 가장 많았고 전남(제주 포함),경남의 순으로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이 당시 평균수명은 남자 36.3,여자 38.5세로 지금보다 30년 이상 수명이 짧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의술의 후진성과 영양부족으로 죽은사람 10명중 4명은 5세도 안된 영·유아였다.
한편 우리나라 사람의 결혼연령은 국내 거주 일본인보다 5∼6세 앞섰으며 일본의 중국 침략으로 사회가 불안해졌던 31년을 고비로 조혼비율은 이전 60% 수준에서 크게 높아져 35년엔 81%에 달했다.
◇산업
이때 우리나라의 공산품 생산액은 5억6천8백만원(당시 쌀한가마 17.6원)정도로 주산업인 농림수산업 생산액의 40%에 불과했다.
전체가구의 75%인 3백1만호가 농사를 지었으며 이중 3분의 2 이상이 소작농이었다. 특히 농토가 비옥한 전북·경기·충남지방은 소작농의 비율이 90%에 육박했다.
◇물가·실업
이때 조선인 근로자들은 남자의 경우 하루 평균 9.55시간 일하고 월 22원 정도를 벌었는데 이는 일본인들에 비해 하루 1시간 이상 더 일하면서 일본인 임금의 45% 정도를 받은 것이다.
또 총독부 실업조사에 의하면 당시 일본인 실업률은 1.0%인데 비해 조선인 실업률은 5.4%로 조선인 취업이 상대적으로 어려웠음을 보여준다.
◇교육
35년 6천8백34개의 서당에 15만3천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했는데 서당수는 12년에 비해 절반 이상 감소한 것이다. 반면 보통학교 학생수는 72만명을 넘어 12년보다 16배나 증가했다.
당시 공립학교 교직원 구성은 보통학교의 경우 조선인 교사가 64.6%를 차지했으나 중등학교는 8.1% 밖에 안됐다. 한편 보통학교 조선인교사의 월급은 51원 정도로 그때 쌀 세가마를 살 수 있었는데 타직종보다는 높지만 일본인 교사의 50∼60%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수출입
35년 우리나라의 전체교역액은 12억1천만원이었으며 이 가운데 일본과의 교역액이 86.3%나 됐다. 당시 무역수지 적자가 1억원이 넘었는데 67%가 일본과의 교역에서 발생해 그때나 지금이나 대일교역은 적자를 면치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수출품목은 쌀로 총수출액의 44.3%를 차지했다.<정철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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