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동양화재(우리회사 1호제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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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920년에 한·일인 공동설립… 주인 수차례 바뀌는 곡절도
오늘날 미국이 우리나라에 대해 금융시장 개방을 요구하면서 먼저 내놓은 카드가 보험이듯 구한말 문호개방이 되면서 외세가 가장 먼저 진출한 업종도 보험이다.
1879년 일본의 동경해상화재보험이 부산에 해상보험 대리점을 설치하면서 시작된 국내보험은 이후 일본 보험회사 대리점들의 독차지였으며,이들은 일본보다 높은 요율을 책정하며 국내 자본 유출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심지어는 소(우)보험이라는 세계에서도 전무후무한 상품까지 만들어 농민들을 꾀기도 했다.
일본인의 국내시장 독점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발이 커지고 3·1운동 이후 유화정책의 필요성을 느낀 일제는 1920년 한국인과 일본 상공인이 공동으로 조직한 조선화재해상보험의 설립을 승인하는데 이 회사가 바로 오늘날 동양화재보험의 전신.
뒤늦은 출발이었고 일인주도의 회사였지만 상품의 요율이 낮았고 그나마 한국인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화재보험을 중심으로 이용객들이 급증,30년엔 업계 1위로 성장했다.
해방과 함께 정부에 귀속되면서 일제의 그늘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로 이름을 동양화재로 바꿨으나 신동아손해·대한화재보험 등 무려 9개의 순수 국내회사들이 설립되면서 가입자의 이탈이 속출,55년엔 업계 최하위로 추락했다.
이 때문에 55년 민영화 작업으로 이화학당에 넘어갔다가 62년엔 당시 동화백화점(현신세계백화점)·동남증권·동방생명을 소유하고 있던 강의수씨에게 인수됐으며,63년엔 강씨의 급작스런 타계로 강씨 기업 전체를 인수한 삼성그룹에 또 다시 넘겨졌다.
그러나 삼성은 이미 안국화재를 소유하고 있어 당시 해상운송업을 활발히 벌이던 한진그룹이 보험회사를 원해 67년 한진소속이 됐다. 동양으로서는 수차례 주인이 바뀌는 고난의 역사를 겪은 셈이나 한진에 정착하면서 방랑을 마칠 수 있었고,한진해운과 KAL의 보험물량 덕에 업계 5위로 떠오르는 명예회복까지 하게 됐다.<이효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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