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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처녀 하은주의 '나의 인생, 나의 농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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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선일초등학교 4학년 때 농구를 시작한 소녀가 있었다. 아버지는 국가대표 농구선수 출신이고, 어머니는 사이클 선수였다. 유난히 키가 큰 그녀는 농구를 하는 데 최적의 신체조건까지 갖췄다. 농구하는 게 즐거웠던 소녀는 선일여중 시절 치명적인 부상이 생겼다. 오른쪽 무릎 연골이 닳아 없어져서 수술을 했고, 더 이상 운동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걸 깨달았다.

학교 측에 농구를 그만두고 전학을 가겠다고 말했다. 학교 측에서는 만일 그녀가 다른 학교에 갔다가 거기서 다시 농구를 시작하면 큰 손해라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다른 학교에 가려거든 운동 포기각서를 쓰라"고 했다.

여기까지가 1998년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향하기 전의 농구선수 하은주(24.신한은행) 선수의 이야기다. 하은주 선수는 치료를 받으면서 공부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일본 학교의 제안을 받고 일본행을 택했다. 그녀의 농구 인생에서도 이때는 큰 전환점이 됐다. 한국에서는 체육특기자 조건을 모두 포기했기 때문에 더 이상 농구를 할 수 없었지만 일본에서는 농구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하 선수는 일본에서 고등학교(오카고)와 대학교(시즈오카 단과대)를 다녔다. 낯선 땅에서 혼자 학교를 다닌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지만 점차 적응해가며 웃음도 되찾았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한 후 진로를 결정할 때가 되자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일본여자농구(WJBL) 규정상 외국인은 자국 리그에서 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은주 선수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2003년 일본에 귀화했다. 그리고 WJBL 샹송화장품에 입단했다. 데뷔 첫해에 하 선수는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2m2㎝의 장신 하은주 선수 덕분에 샹송은 우승을 밥 먹듯 했다.

일본 국적을 취득한 후 또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일본대표 자격도 함께 얻은 것이다. 한국의 농구인들로서는 엘리트 체육 시스템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다가 일본행을 택한 하은주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한국을 격파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게 힘들었다. 하 선수는 2005년 일본 국가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하 선수 자신 역시 한국인으로서 일본 대표가 된다는 게 괴로웠을까. 일본 대표에 선발된 뒤 무릎 부상을 이유로 대표선수로서는 한 경기도 뛰지 않았다.

하은주 선수의 일본 생활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2006년 봄이다. 하 선수는 그동안 꿈꿔왔던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진출을 눈앞에 뒀다. WNBA의 LA(로스앤젤레스) 스파크스와 계약하고 여름에 시작하는 리그에 참가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소속팀은 미국 진출을 순순히 허락하지 않았고, 하 선수와 팀 사이에 불화가 생겼다. 그리고 그해 6월 말 하 선수는 "한국 국적을 회복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녀는 그해 8월에 안산 신한은행에 입단했다. 신한은행은 하 선수를 영입하자마자 겨울리그에서 우승했고, 하 선수는 한국여자프로농구(WKBL)에서 다시 한번 신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2007년, 다시 한국 국적을 회복한 하은주 선수는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 나섰다. 한국은 8년 만에 이 대회 정상을 탈환했고, 동시에 2008 베이징올림픽 본선 티켓도 차지했다.

이처럼 하은주 선수는 지금까지 누구도 겪기 어려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일까. 하 선수는 나이에 비해 속이 깊고 배려심도 남다르다. 서류상으로 두 번이나 국적을 바꿨고, 곡절을 겪으며 농구를 했던 하 선수에 대해 궁금한 점을 모아봤다.

◆하은주 선수는 한국이 싫어서 일본으로 갔나?

그녀는 "한국이 싫어서 간 게 아니라 농구를 하기 위해 일본에 간 것"이라고 강조했다. 1998년부터 2006년까지 일본에서 지낸 8년 동안 몸은 일본에 있지만 마음은 한국과 일본에 모두 있다는 게 하 선수의 딜레마였다. "친구들은 일본에 있고, 일본은 내가 힘들 때 손을 내밀어준 은인의 나라다. 하지만 조국은 늘 한국이었다. 2006년 초에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을 보면서 한국을 응원해 동료들에게 한 소리 듣기도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하은주 선수에게 태극마크의 의미는 어떤 것?

어린 시절 농구를 시작했을 때부터 가장 큰 꿈은 국가대표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쉽게 이뤄질 수도 있었던 그 꿈은 결국 농구를 시작한 지 14년 만에야 이뤄졌다. 하 선수는 "늘 갖고 있는 사람들은 모른다. 나처럼 한 번 잃어버린 사람은 조국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고 말했다. 그녀는 "태극마크를 달고 태릉에서 훈련하는 모든 과정이 즐거웠다"고 밝혔다.

◆"우승을 놓쳐본 기억이 없다." 하은주 선수는 정말 농구를 잘하나?

아직은 기술보다 키가 더 점수를 받고 있다. 2m2㎝의 한국 여자농구 최장신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위력적이다. 그러나 비슷한 신장의 적수와 겨뤄본 적이 없다는 게 국제무대에서는 약점이 될 수 있다. 하은주 선수는 "아직도 코트에 나서면 심리적으로 조절이 잘 안 된다. 욕심만 내고, 너무 흥분한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모자란다. 갈 길이 멀다"고 인정했다.

◆하은주 선수의 별명은 '수재'?

하은주 선수는 지난해 일본의 세토쿠대학 영문과에 편입했다. 그는 "농구가 좋고, 현재 농구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만약에 나중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자격이 없어서 못하면 억울할까 봐 공부를 한다. 그런데 공부라는 게 중독성이 있어서 학위나 자격증을 따는 게 점점 재미있어진다"고 설명했다. 하 선수는 이미 일본에서 영어 선생님을 할 수 있는 자격증이 있다. 일본어는 물론 원어민 수준이고, 영어 실력도 수준급이다.

이은경 JES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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