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외교가 김일성대 동창생 많다/동구권 개방이후 「새그룹」 형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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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국은 직원 대부분 연수/체코 서기관은 한국고전 번역/루마니아대사 웅변대회 우승/사회주의국 대사관 주변 수두룩
북방외교로 사회주의국가 거의 대부분과 수교가 이뤄지자 서울에 김일성종합대학 동창외교관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사회주의국가들은 한국과 수교이후 한국어를 구사하는 외교관을 파견하는데 이들 대부분이 평양 김일성대학 어학부에서 유학했거나 최소한 북한에서 어학연수를 한 경력을 갖고 있어 서울 외교가에 새로운 그룹을 형성할 지경이다.
김일성대 출신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경우가 구엔 푸 빈베트남대표(대사). 빈대사는 하노이에서 고등학교만 졸업한 65년 17세때 김일성대에 들어가 5년간 유학했다. 빈대사의 부인은 러시아문학박사이지만 17세의 큰 아들도 서울의 외국어대에 유학시킬 예정이어서 한국통 2대가 되는 셈.
또 트란 반 휴 1등서기관,구엔 안 두이 3등서기관도 김일성대출신이나 빈대사를 비롯한 이들이 모두 평양 액선트를 거의 없애 한국인의 선입견을 없애려 상당히 노력하는 인상.
페렌렌 우르진르훈데브 몽고대사(45)는 지난 64년부터 89년까지 북한주재대사까지 역임,실제로 김일성주석이나 김정일비서와도 친분을 가진 경우. 우르진르훈데브대사는 87년 몽고사범대를 졸업한후 4년만에 김일성대 조선어학과를 졸업했다. 우르진르훈데브대사도 쌍둥이 딸을 서울대 영문과와 국문과에 입학시켜 한국전문가 일가가 되는 셈.
한국의 북방외교에 돌파구가 돼 가장 주목을 끌었던 헝가리의 산도르 에트레대사(49)는 김일성대 유학외에도 79년부터 84년까지 북한대사를 거칠 때까지 계속 한반도문제만 담당해 한국사람보다 한국말을 더 잘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가끔 어려운 고어나 유머까지 구사하는 바람에 에트레대사와 만나는 한국 외교관마저 당황하게 한다는 것.
55년부터 60년까지 김일성대에서 공부하는 등 평영에서만 15년을 근무한 이지도르 우리 안루마니아대사(58)는 지난 6월 코리아 헤럴드에서 주최한 외국인 한국어웅변대회에 출전해 우승,유창한 한국어를 공인받았다. 체코대사대리로 부임해 현재 1등서기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야로슬라브 바징카(61)야말로 한국인보다 훨씬 한국을 잘 아는 외국인. 바징카 1등서기관은 찰스대 철학부 한국어과를 졸업한뒤 김일성대가 아닌 북한역사연구소에 유학했다. 그러나 그는 김시습의 『금호신화』와 박인로의 가사집을 체코어로 번역한 것을 비롯해 한국미술사 개요,한국의 법률체계,율곡사상과 한국교육,2차대전중 조선의 해방투쟁 등 한국관련 저서만 여섯권을 갖고 있을 정도.
김일성대에서 5년간 수학한 게오르기 미토프불가리아대사는 이미 귀국했고,러시아의 예레멘코공사는 모스크바대 동양학부를 졸업한뒤 북한 조선과학원 어문학연구소에서 연수했으나 연암 박지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을 정도로 한국 고전에 정통하다.
가장 많은 김일성대 동문을 보유한 나라는 역시 중국이다. 특히 중국은 장팅옌(장정연)대사와 북경대조선어학과 동창인 부인 담정1등서기관은 물론,현재 20여명의 대사관 직원중 거의 전부가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다. 이들도 상당수는 김일성대에서 어학연수과정을 밟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한국내에서의 인식을 고려해 경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처럼 사회주의권에서 한국어를 구사하는 외교관이 많은 것은 한번 전문분야가 정해지면 평생 그 분야에 종사해야 하는 사회체제가 주 원인이다.
그러나 사실 「한국 표준어」와 「북한 문화어」가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고,사회주의국가들과 북한과의 관계도 점차 악화되고 있음에도 서울에서는 외교관에 대한 어학연수 프로그램은 커녕 장기적인 대책도 거의 없는 상태.
다만 일본 대사관의 경우 대개 대사는 개인교습,직원은 연세대어학당 등 서울시내 각 대학에 연수과정을 먼저 거치게 하고 있다.<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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