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전시회-강인희<전통요리연구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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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얼마전 나는 한 전문대학전통요리과로부터 졸업기념 떡 전시회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을 방고 참석한 적이 있었다. 전시장에 들어선 나를 우선 놀라게 한 것은 학생들의 손으로 모두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종류의 떡이 전시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찌는 덕·치는 떡·빚는 떡·지지는 떡 등으로 대별해 스물네댓 가지가 색스럽게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심 제법 흉내는 냈구나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학생대표가 나와 떡을 만들어내기까지의 자세한 과정을 설명하다 새삼 그때의 어려움이 북받치는 듯 몹시 울먹이는 것이 아닌가. 그제서야 나는 정신이 번쩍 났다. 그리고 관심있게 맛을 음미함으로써 이 전시품들이 그냥 모양만 흉내낸 것이 아니라 혼신의 힘을 다해 우리전통의 맛과 멋을 재현해낸 예술품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음악·미술·문학 등이 정신생활을 살찌우는 예술이라면 정성들여 잘 만들어진 이 음식 또한 먹는 이의 몸과 마음과 정신을 살찌우니 예술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실 우리의 전통음식은 단순히 배고픔을 덜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하나의 예술에 비견될만하다.
그런데 이날 뜻밖에도 젊은 학도들이 예술품을 다루듯 심혈을 기울여 우리 전통의 맛·색·향기·모양을 재현해낸 것을 보니 나의 마음은 뿌듯하기 이를데 없었다.
이러한 젊은이들이 있는 한 우리 맛의 맥은 영원히 이어지리라. 교문을 나서는 나의 발걸음은 마냥 가법기만 했다.

<◇필자약력>
▲1919년 서울출생
▲ 일본 상모대학졸업
▲공주사대조교수
▲명지대교수(67∼84년)
▲저서 『한국식생활사』 『한국의 맛』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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