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화학 무기(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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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인체에 해로운 화학제나 독극물이 전쟁수단으로 사용된 역사는 꽤 오래 되었다. 서양에서는 기원전 430년께 유명한 펠로폰네소스해전에서 아테네군이 송진과 유황을 바른 나무를 태워 그 매운 연기를 스파르타군 쪽으로 흘려 보내 대승을 거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그후 19세기말 보어전쟁때는 영국군이 피크린산을 포탄에 충전시켜 사용했고,러일전쟁때는 일본군이 비산화학물을 전투에 이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원시적인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대량살상을 목적으로 한 본격적인 화학무기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15년 4월22일 1차 세계대전때의 이풀전투에서였다. 당시 독일군은 진지전으로 교착된 전세를 타개하기 위해 약 3만개의 염소방사통을 사용,염소가스를 연합군쪽에 흘려보냄으로써 일거에 1만5천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어 동부전선에서는 새로 개발한 질식성가스 포스겐을 소련군에 사용해 5천여명을 살상했다. 그러나 연합군쪽에서도 그 보복으로 화학무기를 전선에 투입,본격적인 화학전이 전개됐다. 그 결과 1차대전중 화학무기에 의한 사상자수는 무려 1백30만명이나 되었다.
화학무기 사용에 의한 이같은 비인도적 대량살상을 막기위해 1919년 베르사유조약은 독일의 독가스제조·수입·사용을 금지시켰고,20년 국제연맹은 미·영·이·일 5개국에 대해 독가스 사용금지를 제의했으나 독일을 의식한 프랑스의 거부로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그 때문에 2차대전 개전당시 각국의 독가스 보유량은 1차대전때보다 3배나 더 많은 35만2천t이었다. 특히 독일은 새로 개발한 「G가스」라 불리는 월독성의 신경가스를 대량 보유하고 있었으나 전쟁에 사용하지는 않았다. 연합군의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엊그제 안기부는 북한이 생화학무기 13종을 개발,평양 등 여섯곳에 비축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종래의 화학무기와 달리 세균을 이용한 생물무기는 살상효과가 가공할 정도다. 가령 페스트균의 경우는 1.8g,보트리늄균은 4g으로 남한인구를 전멸 또는 무력화시킬 수 있다니 그 치사율을 짐작하고 남는다. 안그래도 핵무기개발을 서두르고 있는 북한이 국제법상 불법화된 생화학무기까지 대량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마치 어린아이에게 칼을 쥐어준 것과 같은 아슬아슬한 느낌이 든다.<손기상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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