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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잃어버린 1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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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누구나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의 낙심은 크다. 그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시간이든 돌이킬 수 없이 가버린 것들에 대한 회한은 오래도록 남는다. 프랑스의 문호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격변기를 회고하는 방대한 규모의 연대기적 대하소설이다. 프루스트는 '좋았던 시절'에 대한 기억을 복원함으로써 무상한 세월을 붙잡으려 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불안과 혼돈에 절망한 미국의 문학 청년들이 대거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쾌락으로 자신들의 허무를 달랬다. 이들은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로 불렸다. 감수성 예민한 젊은이들의 집단적인 상실감을 드러낸 말이다.

이에 비해 '잃어버린 10년(Lost Decade)'은 특정한 국가에서 장기간 경기 침체가 계속된 경우를 지칭한다. 경제성장이 지체되면서 국가의 발전이 멈췄다는 뜻이다.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극심한 불황에 시달린 1945년부터 55년까지를 잃어버린 10년으로 친다. 남미에서는 연쇄적인 외채 위기를 겪은 이후 이 지역 경제가 일제히 퇴보한 80년대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른다. 가장 최근의 예는 일본이다. 80년대에 쌓였던 거품이 90년 일시에 꺼지면서 찾아온 극심한 장기 불황이 10년 넘게 계속됐다. 일본 스스로 이 시기를 '잃어버린 10년(失われた10年)'으로 규정했고, 요즘은 아예 일본의 경우를 가리키는 용어로 정착됐다.

'잃어버린 10년'을 두고 정치권에서 논란이 한창이다. 한나라당이 지난해부터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싸잡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공격한 데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최근 '민주주의를 되찾은 10년'이라고 맞받아쳤다. 경제가 부진했다는 지적에 대해 엉뚱하게 민주주의를 회복한 기간이었다고 반박한 것이다. 그러나 김근태 의원은 열린우리당 의장이던 지난해 6월 이미 "지난 10년간 개혁 세력은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에 무능했다. 잃어버린 10년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 '잃어버린 10년'의 원조는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이다. 그는 예산처장관 시절인 2005년 10월 "YS정권의 정책 실패로 외환위기가 왔고, DJ정부는 이를 수습하다 끝났다"며 "우리나라에선 이 두 정권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주장했다.

이쯤 되면 잃어버린 10년이 과연 언제인지조차 헷갈린다. 서로 책임을 떠넘기려다 보니 정작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모를 지경이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