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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의즐거운천자문] 말이 흉기로 난무하는 인터넷…룰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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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드라마가 잠시나마 눈길을 머물게 하는 건 그 속에 감동이 아니라 갈등이 있기 때문이다. 서로 칭찬하고 양보하는 천사들끼리 평화롭게 살다가 행복하게 마감하는 드라마는 매력이 없다. 마음을 빼앗지 못한다. 시청자는 악인을 욕하고 착한 주인공을 응원한다. 궁금하다. 현실에서도 그럴까.

지금 대학생을 자녀로 둔 한국의 부모세대라면 앨범 한 모퉁이에 창경원의 추억이 남아 있을 것이다. 벚꽃이 피고 케이블카가 날고 동물원이 있고 김밥과 사이다를 먹던 곳이다. 텔레비전보다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죽이는 젊은이들에게 인터넷은 일종의 동물원이다. 악어도 있고 기린.늑대.공작새도 있고 미아보호소도 있다.

인터넷에서 길을 잃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잔인한 댓글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는 사람마저 생기는 형편이다.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출연한 다이어트 소녀의 죽음을 둘러싸고도 논란이 확산 중이다. "안 보면 되지." 실정을 모르거나 책임감이 결여된 조언이다. 괴롭히는 친구 때문에 학교 가기 싫다는 친구에게 '전학 가면 되지' 하는 것과 비슷하게 들린다.

범죄 관련 프로를 보다 범행을 계획하는 경우도 있고 범죄 예방법을 배우는 사례도 생긴다. 미디어교육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사람을 마구 구타하는 데 아무도 매 맞는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 비정한 공간도 있다. 사각의 링이다. 왜 구출해주지 않는가. 그곳엔 룰이 있고 전문가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원에 철창과 사육사가 있듯이 인터넷에도 룰과 심판이 필요하다.

사이버 세상에도 거짓말과 거친 말은 넘쳐난다. 그 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 심성이 악해지거나 약해질 수가 있다. 부모에게는 두 가지 교육목표가 절실하다.

착하게 키워라. 그리고 강하게 키워라. '내 자식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복수의 부메랑을 예약한 꼴이다. 총이나 칼로 죽은 사람보다 말이나 글로 죽은 사람이 더 많다는 걸 알려주어라. 마음대로 상상하되 신중하게 표현하라. 너의 무심한 한마디가 오늘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

하수도는 필요하다. 맨홀 뚜껑을 열고 일부러 냄새를 맡을 이유는 없지만 가스가 새어나올 즈음엔 한 번 열고 점검해 보아야 한다. 폭발하면 많이 다친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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