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감정이 선관위 탓인가/최훈 정치부기자(국감 현장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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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1일 국회 내무위의 중앙선관위 감사는 자못 엄숙한 분위기속에서 시작됐다. 다가올 대선을 책임지고 치러내야할 선관위에 대한 감사여서 20여명의 내무위원 거의가 이레적으로 참석했다. 윤관선관위원장도 의원들의 출석요구의결 이전에 국감장에 나와 선관위의 굳은 의지를 엿보이게 했다.
질의한 의원들 모두가 『새시대개척의 운명을 좌우할 선관위』 등 선관위의 「역사적 사명」을 강조하며 선거사범 처벌권 강화·독자예산확보 등 건설적 대안을 쏟아내놓았다.
이렇듯 잘 굴러가던 판은 여덟번째 양창식의원(민자)의 질의때부터 그만 깨져버리고 말았다.
호남지역에서 민자당 후보로 당선된 2명중 한명인 양 의원(남원)은 『지난 총선때 호남에서는 야당이 여당이고 여당이 야당이었기 때문에 관권선거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오히려 여당활동책의 집앞에 휘발유통을 갖다놓고 불지르겠다는 협박은 물론 여당 투표참관인조차 위협때문에 투표장에 나오지 못할 정도였다』고 폭로했다.
양 의원은 나아가 『한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한명도 당선안된 것은 조직적 폭력에 의한 방해 때문이 아닌가』고 되물은 뒤 『선관위는 관권선거 뿐 아니라 폭력·공포조장에 의한 이러한 류의 불법선거도 사라지게 해야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에 이협의원(민주)이 발끈해 『특정정당 전원당선 부정선거 운운은 지역감정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으며 그 지역주민들을 양식·선구안·시대적 지향성도 없는 사람들로 모독할 소지가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문희상의원(민주)이 양 의원을 비아냥댄뒤 『그렇다면 부산은 민자당이 모두 폭력을 써 당선되었으냐』고 반문했다.
이날 국감은 결국 윤 위원장이 『이번 대선에서는 반드시 지역감정을 없애 어느 지역이든 모든 후보가 유세할 수 있도록 유도할 방침』이라고 밝혀 무마됐다.
이처럼 지역감정 문제는 언제 어디서나 쟁점이 되고 폭발할 수 있는 괴력을 갖고 있다. 순간의 유·불리만을 계산하면 이것처럼 효과적인 수단이 없는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감정이 공명선거 분위기를 흐리는 요인으로 작용되지 않게하는 처방을 선관위에서 찾는 것은 자칫 자기를 속이는 제스처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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