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침체의 골 너무 깊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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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조업의 정상적인 설비투자는 제조업 경쟁력 강화의 기본요건이다. 생산설비의 지속적인 개체와 확충이 없이는 경쟁력 강화의 논의 그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작년부터 분기마다 대통령주재로 개최돼온 제조업 경쟁력강화대책회의는 10일로 일곱번째의 모임을 가졌고 이제 최종성과를 점검할 마지막 회의를 남겨두고 있다. 대책회의를 구심점으로 그동안 기업과 정부가 제조업 경쟁력 강화에 쏟아온 정성을 생각하면 이 시기에 제조업의 설비투자가 얼어붙고 있다는 사실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제조업 설비투자는 이미 올 상반기에 보기드문 감소추세를 기록했다. 하반기에 들어와서도 호전의 기미는 커녕 더 가파른 하강국면을 짐작케 하는 단서들이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
최근 발표치인 8월의 설비투자관련 지표들은 투자의 뒷걸음질이 더 이상 방관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음을 말해준다. 국내 기계수주액과 기계류 수입액 모두가 두자리수의 감소율을 보였다. 상공부가 조사한 업종별 재고수준도 3·4분기 실적치와 4·4분기 전망치의 양쪽에서 불길한 그림자를 드러내고 있다.
설비투자의 냉각이 금년으로 끝난다는 보장은 없다. 설비투자가 뒷걸음치는 동안은 일시적이나마 제조업의 경쟁력은 제자리에 묶여 있거나 심하면 약화의 길로 들어선다고 봐야 옳다.
이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부가 문제의 심각성을 바로 보는 자세부터 견지해야 할 것이다. 임기말의 정부가 재임중의 경제치적을 생각하는 것은 있음직한 일이겠지만 물가와 국제수지 등에서 이룩한 경제안정기조 정착의 실적부각에 신경을 쓰다보면 그 부작용으로 치부되는 투자위축은 소홀하게 다뤄질 위험이 있다. 반드시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투자부진에 대한 정부대응은 그 강도와 시기선택에 있어 완벽을 기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20일의 대책회의에서 5조원이상의 기업설비자금을 내년 상반기까지 특별공급키로 한 것은 한발 늦은 처방이기는 하나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곧장 설비투자의 확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금융기관의 창구를 통해 자금이 실제로 투자기업들에 전달되는 것은 별개의 일이며 기업의 투자심리가 자금사정 하나만으로 되살아날지도 의문이다. 금년도 몫의 설비자금 소화가 지지부진하고 지원대책의 홍수속에서 중소기업의 부도가 속출했던 사정이 이를 말해준다.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특히 제조업의 설비투자 동태를 한층 세심하게 추적하면서 원활한 자금공급을 가로막는 요인들의 제거에 더 많은 잔손질을 해야 할 것이다. 자금공급의 「계획」만으로 대처하기에는 투자침체의 골이 너무 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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