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20년 저금리' 막 내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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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저금리 시대'의 막이 내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풍부한 유동성으로 달아올랐던 세계 증시의 기세도 한풀 꺾였다. 주요 국가들이 앞다퉈 금리를 올려 유동성 흡수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미국 국채 수익률은 5%대로 치솟았다. 미 국채 수익률 5%는 상징성이 높다. 20년 이상 이어온 장기적 금리 하락 추세가 반전될지 모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은행 이성태 총재도 8일 금리 인상을 강력히 시사했다.

◆꼬리 무는 금리 인상=유럽중앙은행(ECB)은 6일 기준금리를 4%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6년 만에 가장 높은 금리 수준이다. 지난 1년 반 동안 ECB는 기준금리를 꾸준히 올려 2%에서 4%로 두 배로 뛰었다. 미국.영국.일본.중국도 줄줄이 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뉴질랜드 중앙은행은 7일 기준금리를 사상 최고치인 8%로 상향조정했다. 주식.석유.원자재 시장이 가열되면서 인플레이션 압박이 심해지자 각국 정부가 금리 인상을 통해 불끄기에 나선 것이다.

금리 인상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은 채권시장이다. 7일(현지시간)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5.11%까지 올랐다. 채권시장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추가 금리 인상을 미리 내다보고 한발 앞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유럽.일본 채권 수익률도 동반 상승했다. 10년 만기 영국 국채 수익률은 9년 만에, 독일의 국채 수익률은 4년 반 만에 각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 국채 10년물도 1.9%로 상승해 10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일본의 지속적인 경기회복에다 금리가 오르기 전에 미리 자금을 확보하려는 주요 통화 당국들의 추가 금리 인상(채권가격 하락)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채권 매물이 매물을 부르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현상을 놓고 저금리 시대의 종언과 고금리 시대의 개막이라는 다소 성급한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세계 최대 채권펀드인 핌코의 투자책임자인 '채권왕' 빌 그로스는 "채권시장이 25년간의 호황을 끝내고 돌연 약세시장으로 돌아섰다"고 평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글로벌 인수합병(M&A)을 부추겼던 세계적인 저금리 현상이 막바지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제동 걸린 세계 증시=금리 상승에 따라 세계 증시도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금리 상승→유동성 위축→증시 자금 이탈→주가 하락'이라는 불길한 시나리오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지난 주말 한국.일본.홍콩 증시가 비교적 크게 밀렸다.

중국 증시는 지난달 29일 기록한 사상 최고치(상하이 종합지수 4334.92)에 비해 10% 정도 하락한 상태다. 미국 다우존스 지수도 사흘 연속 미끄러지다 주말에야 겨우 반등했다. 미국 아밸론파트너스의 피터 카딜로 증권분석가는 "낙관 일색이던 투자자들이 드디어 고유가.인플레이션 같은 부정적인 측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며 "승승장구하던 뉴욕 증시가 조정 양상에 빠질 전조"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낙관론이 아직은 대세다. 미 처치캐피털의 마이클 처치 대표는 "5%대 금리는 역사적으로 보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며 "아직 투자자들이 고금리에 못 이겨 주식을 팔고 나가는 상황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한국도 금리 인상 대열에 동참할 기미다. 8일 이성태 총재는 "경제성장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고 높은 유동성이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채권시장은 이 발언에 자극받아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연 5.28%로 2002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사상 최고치를 8일 연속 경신해온 코스피 지수도 이날 25.76포인트(1.47%) 떨어진 1727.28로 마감해 3개월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손해용 기자

◆채권 금리(수익률)=채권시장에서 매매를 통해 결정되며, 채권 금리와 채권 가격은 반비례한다. 금리가 오르면(내리면) 채권가격은 내려가게(올라가게) 된다. 지금처럼 금리가 더 오를 것으로 보는 투자자들이 채권을 팔면 채권 수익률은 오르고 채권 가격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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