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불안 느끼는 각국국민 무마용/EC 12국 정상들 왜 모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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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주권 유지된다” 설득에 역점/난제는 모두 12월회담 이월
유럽공동체(EC) 12개국 정상들이 참여하는 EC특별정상회담이 16일 영국 버밍엄에서 열린다. EC의장국인 영국의 존 메이저총리 주재로 열리게 될 이번 정상회담은 지난달에 있었던 유럽 외환시장 위기와 프랑스 국민투표 이후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유럽통합의 전열을 가다듬고 통합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불안을 무마하기 위한 일종의 전시용 회담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초 이번 회담에서는 영국·이탈리아의 잠정 탈퇴로 신뢰에 금이 간 유럽통화제도(EMS)의 개선,유럽동맹조약(일명 마스트리히트조약)에 규정된 통합방향에 대한 재검토,덴마크문제 등 유럽통합과 관련한 중요한 문제들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됐었다.
특히 이번 회담을 소집한 메이저 영국총리는 EMS에 대한 근본적 개혁을 영국의 EMS 복귀조건으로 내세우면서 덴마크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마스트리히트조약 비준안에 대한 의회 심의를 보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등 통합논의에 급제동을 걸고 나옴으로써 이번 회담은 유럽통합의 장래를 둘러싼 회원국 정상간 일대 격론장이 될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러나 영국은 유럽통합의 양축인 독일과 프랑스의 강력한 견제에 굴복,결국 메이저총리가 당초 내걸었던 요구조건을 대부분 철회하고 마스트리히트조약 비준에 대한 의지를 재천명함으로써 이번 회담에서 각국 정상끼리 정면대결을 벌이는 극적 사태는 피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이미 덴마크·프랑스의 국민투표에서 확인된 EC행정기구의 권한집중에 대한 우려와 불만을 해소하는데 역점이 모아질 전망이다. 이는 각국의 주권 유지와 통합의 민주성 제고와도 밀접히 관련돼 있는 문제로 이미 각국 정상들은 이 문제에 관한 각자의 입장을 밝힌바 있다. 즉 마스트리히트조약에 명시돼 있는 이른바 「보조성(Subsidiarity)의 원칙」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는데 각국 정상들은 일치된 의견을 보이고 있다.
보조성의 윈칙은 개별국가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보다 EC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이 효과적인 사안만을 EC가 추진한다는 것으로 EC기능을 가능한 한 최소화하기 위한 원칙이다. EC가 주권국가는 아니며 따라서 모든 문제에 대해 관여할 수는 없다는 선언적 의미로 이 원칙이 조약에 명시되기는 했으나 복잡하게 얽혀있는 모든 문제를 두부모 자르듯 잘라 효율성 귀속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려운게 사실인 만큼 국민들의 눈에는 여전히 모호하고 어려운 유러크랫들의 전문용어로 비치고 있다. 따라서 이를 국민들의 피부에 와닿도록 구체화함으로써 마스트리히트조약이 발효되더라도 국가주권이 침해되는 것도 아니고 EC관료들이 모든 문제를 좌지우지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국민들에게 설득해야 한다는게 이들 정상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이번 정상회담에는 물론 덴마크문제도 논의될 전망이다. 덴마크정부는 국민투표에서 마스트리히트조약 비준이 부결된데 따른 법적 문제의 해결과 관련,여덟가지 방안을 백서에 담아 지난 10일 발표했는데 최종 선택은 각 정당간의 협의를 거쳐 오는 12월에 있을 에딘버러 정상회담에 제출하겠다는 계획이어서 이번 회담에서 본격적인 논의는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또 이번 회담에서 EC정상들은 지난 11,12일에 있었던 미·EC간 우루과이라운드협상결과에 대해서도 보고받고 공동입장을 밝힐 예정이나 농산물 문제에 관한 프랑스의 입장이 워낙 강경해 조속한 타결을 촉구하는 원론적 입장표명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렇게 볼때 이번 정상회담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통합노선에는 이상이 없다는 것을 과시하는 대외 선전용 행사로 그치고,힘들고 어려운 결정은 모두 에딘버러 정상회담으로 넘어가게 될 전망이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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