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수뇌부 잘못으로 전체 매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7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 검찰 차량 한 대가 도착했다. 서울중앙지검에서 나온 지휘검사와 수사관 6명은 곧바로 서장실과 수사과장실, 형사.수사지원팀으로 향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과 관련된 수사 자료를 찾고, 경찰수사팀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뒤졌다. 3시간여에 걸친 압수수색에서 검찰은 사과박스 두 개 분량의 자료를 확보해 경찰서를 떠났다.

같은 시각. 서울 마포구 광역수사대(광수대)에도 검찰이 들이닥쳤다. 광역수사대는 인지 및 강력 범죄를 전문으로 하는 일종의 '별동대'로 서울경찰청 직속이다. 강력2팀은 김승연 회장 보복폭행 사건 관련 첩보를 가장 먼저 입수했지만, 경찰 수뇌부의 지시로 사건을 남대문서로 이첩했다.

검찰 수사관들은 남승기 광수대장실과 강력2팀 사무실로 향했다. 두 시간 동안 남 대장(경정)은 사무실 탁자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수사관들이 박스 두 개에 자료와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채우는 모습을 지켜봤다.

◆경찰, "명예 땅에 떨어졌다"=수사 은폐.축소 의혹으로 경찰 조직이 검찰에 압수수색당한 사태에 경찰은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보복폭행 사건을 수사한 남대문서의 한 경찰관은 "일부 수뇌부의 잘못으로 경찰 전체가 매도되는 것 같아 착잡하다"고 말했다. "칼자루를 쥔 검찰의 손에 놀아나는 셈"이라는 불만도 터뜨렸다. 또 다른 경찰관은 "검찰에 수사의뢰한 순간부터 예견됐던 것 아니냐"면서도 "검찰이 자료 요청을 하지도 않고 압수수색에 나선 것은 그만큼 경찰을 못 믿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 셈"이라고 말했다. 광역수사대 형사들도 일손을 놓고 압수수색 광경을 지켜봤다. 지능팀의 한 관계자는 "경찰 명예가 땅 끝까지 떨어진 날"이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외압을 반드시 없애 더 이상의 수치를 당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택순 경찰청장의 소환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경찰대 출신의 한 총경은 "검찰이 경찰 수뇌부 소환을 앞두고 수순 밟기에 들어간 것 같다"고 해석했다.

◆우여곡절 끝 영장 발부=경찰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과 통신 조회는 법원에서 기각됐다 재청구하는 우여곡절 끝에 이뤄졌다. 압수수색은 당초 5일 이뤄질 계획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대상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그러자 검찰은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와 남대문경찰서, 남대문서 태평로 지구대 세 곳으로 압수수색 대상을 특정, 다시 청구해 영장을 발부받았다. 휴대전화 통화 내역 확보도 어렵게 이뤄졌다. 당초 검찰은 관련자 33명의 통화 내역 조회를 신청했으나 기각당하자 핵심 관계자 5명의 휴대전화 통화 내역만 추려내 신청, 영장을 받았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경찰 수뇌부가 있는 경찰청과 서울경찰청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벌일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수사는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 답했다.

민동기.김경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