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냉전」열고 떠난 브란트/유재식 베를린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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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빌리 브란트 전독일총리의 타계로 독일 전체가 조용히 흐느끼고 있다.
그의 타계소식이 전해진 9일 독일의 각 정당·정파는 앞다퉈 애도성명을 발표했고 연방하원은 회의 시작에 앞서 전의원이 기립,묵념했다.
그가 이끌었던 사민당 추도식에 참석한 의원들은 대부분 눈물을 훔쳤다. 이날 주요 관공서 건물엔 조기가 게양됐고 이날 밤 본의 사민당사 앞에는 횃불과 촛불을 든 군중이 운집,그의 명복을 빌었다. 같은 시각 그가 지난 57년부터 66년까지 시장을 역임했던 베를린의 구시청사(쇠네베르크구청)에선 조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수 많은 시민이 모여 장미와 그의 초상화를 들고 분단과 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문까지 침묵행진을 했다.
독일인들은 물론 전세계가 그의 업적을 기리고 추모하는 가운데 특히 구동독 출신인 볼프강 티에르제 사민당 부총재는 『아버지를 잃었다』며 울먹였다.
그는 「자유의 수호자」(메이저 영국총리)였고,「평화와 정의의 인물」(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이었으며,「동서냉전체제 붕괴의 초석을 다진 인물」(고르바초프 전소련대통령)이었다.
그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진 지도자였다. 동서냉전의 한 가운데인 지난 61년 8월13일 베를린장벽이 구축되자 3일후 군중대회에서 『브란덴부르크문이 동서 국경에 서지 않게 되는 날이 반드시 온다』며 독일의 통일을 예언했고 69년 총리가 되자 동방정책으로 이의 기초를 다졌다.
그는 행동하는 양심,용기있는 정치가였다. 그가 폴란드를 방문,유대인 위령탑에서 무릎을 꿇고 참회한 것은 그 어떤 수식어보다도 폴란드인,나아가 전세계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후일 그는 자서전에서 『나는 독일역사의 나락에서,그리고 수백만 희생자의 짐 아래서 인간의 말이 소용 없을 때 행하는 것을 했을 뿐이다』고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그는 또 철저한 민주주의 신봉자였고 평화주의자였다. 그는 69년 총리가 되자 「민주주의 강화」를 역설했고 71년 노벨평화상 수상연설에서는 『전쟁은 결코 정치의 수단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74년 총리직을 사임한 이후엔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장과 유엔남북위원회(브란트위원회) 위원장으로 활약하면서 빈국에 대한 부국의 지원을 호소했다. 그가 있었기에 동서냉전체제의 붕괴가 가능했고,이로 인해 한반도의 평화에도 적지않은 영향이 미쳐 우리도 그에게 빚이 있는 셈이다.
이를 갚는 길은 『서로에게 속하는 것은 서로 하나가 된다』는 그의 말을 실현하는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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