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week&] "내 인생 최고 블루칩 딸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방송인 홍진경(左)씨가 어머니 김민정씨와 환하게 웃고 있다. 엄마보다 머리 하나가 큰 딸은 삶의 기둥이자 좋은 친구다.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요즘 유행하는 '사랑'시리즈 아세요? 50~60대 여성들이 자녀를 사랑에 빗대 표현한 것 말이에요. 며느리는 사랑해선 안 될 사람, 아들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딸은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라나요. 요즘 중년 여성들에겐 또'3복(福)'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친구, 돈, 그리고 딸이 있어야 노후가 행복하다지요. 세상 변하긴 참 많이 변했나 봅니다. 딸 낳고 시부모 눈치 보며 전전긍긍하던 것, 이제 '전설의 고향'처럼 먼 옛일이 돼 가고 있으니까요. '딸 가진 위세'로 위풍당당한 요즘 엄마들 이야기, 한번 들어 보실래요.

글=홍주연 기자 <jdream@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 김혜경(동덕여대 교수)씨는 요즘 딸 김나연(21)씨와 데이트 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모녀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백화점이나 카페.찜질방 등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주말이면 단 둘이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딸이 제겐 가장 친한 친구예요. 서로 온갖 이야기를 다 하죠. 아들은 나이들수록 좀 거리감이 생기더라구요."

# 이진희(57)씨는 동창 모임만 다녀오면 기분이 우울해진다. "친구들이 그래요. 요즘 3대 바보 중 하나가 '며느리의 남편을 아들로 생각하는 여자'라고요. 아들은 육촌 시동생보다 못하대요." 아들만 있는 그 역시 딸 있는 친구가 부럽단다. "우린 아들 내외만 바라보는데 며느리는 자기 친정이 우선이더라고요. 딸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딸 가진 설움'은 이제 옛말이다. 요즘은 '딸 가진 대접'을 받는 세상이다. 무뚝뚝한 아들보다 살뜰하게 부모를 챙기는 딸이 낫다는 가정이 늘고 있다. 가족 수가 줄고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바뀐 세태다. 대를 잇는다는 생각이 약해진 데다 하나만 낳을 거면 키우기 수월한 딸이 낫다는 것이다. 여성의 경제력이 커지면서 친정에 당당하게 공을 들이는 기혼 여성도 많아졌다.

딸을 선호하는 것은 젊은 엄마들이 더하다. 지난달 둘째를 낳은 박민정(32)씨는 출산 전 아들인 것을 알고 내심 좀 아쉬웠다고 한다. "올해 다섯 살인 큰딸이 얼마나 엄마한테 착착 감기는데요. 둘째도 꼭 딸을 낳고 싶었어요." 박씨의 말이다. 초등학교 5학년과 2학년 형제를 키우는 맞벌이 주부 이효재(37)씨도 아쉽긴 마찬가지다. "친구 딸은 4학년인데도 혼자 병원에 가고 숙제도 알아서 해요. 그에 비해 우리 아들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줘야 하죠." 아들과 딸의 학력 차이도 딸을 선호하는 원인이 된다. 서울 대치동의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김지숙씨는 "아들 있는 부모들이 남녀공학을 피하려 한다. 여자애들 성적이 워낙 좋아 남자애들이 맥을 못춘다는 것이다. 집을 구할 때도 남자 중학교에 배정받을 수 있는 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유통업체들은 '엄마와 딸'을 아예 마케팅 대상으로 잡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2005년부터 매년 11월을 '모녀의 달'로 정하고 '닮은꼴 모녀 찾기' '엄마가 딸에게 물려주는 음식 이야기' 등 10여 가지 행사를 연다. 이 백화점 마케팅팀 이규한 과장은 "모녀 고객이 많기 때문에 이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행사를 기획한다. 고객들의 반응이 아주 좋다"고 말했다.

'처가와 뒷간은 멀수록 좋다'는 말도 요즘 세태와는 거리가 멀다. 여성부의 '전국가족조사'에 따르면 여성들의 절반 이상(55%)이 한 달에 한두 번 이상 친정 부모를 찾아간다고 답했다. 이는 여성들이 시부모를 찾아가는 비율(57%)과 비슷했다. 친정에 대한 의존도도 높았다.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경우는 아내의 부모(18.1%)가 남편의 부모(11.1%)보다 높았다.

이에 대해 여성정책연구원 장혜경 가족정책센터 소장은 "우리나라도 부계 중심 사회에서 양계(兩系) 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 딸이 부모를 모시는 집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장 소장은 이같은 변화에 대해 ▶여성들이 집안에서 의사 결정을 주도하고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처가 의존도가 높아졌으며 ▶아들보다 딸에 대한 기대가 적어 상대적 만족감이 높은 것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